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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얇지만 좁지 않아요" 1mm까지 계산한 공간설계

잠원동 협소주택 '얇디얇은 집'

얇디얇은 집을 옆에서 본 모습. 폭이 1.4~2m에 불과한 말 그대로 ‘얇디얇은’ 집이다. /사진제공=이한울 작가




“아직 건축물이 지어지지 않은 땅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같습니다.”

인구가 집중되고 집 지을 땅은 부족해지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자투리땅’은 기회이자 숙제다. 개발 등을 거치고 조각처럼 남은 부지는 작고 모양도 특이해 용도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의 협소주택 ‘얇디얇은 집’은 많은 건축가들이 고개를 가로저은, 도저히 집 짓기 어려운 땅 위에 들어섰다. 이 집을 설계한 ‘에이앤엘스튜디오(AnLsudio) 건축사사무소’의 신민재 소장은 땅을 동화 속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 비유하며 “필요와 조건이 맞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지만 대량생산된 기성화처럼 누구나 편하게 신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생활 패턴과 소유물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파악한 뒤 덜어내고 깎아내기를 반복하면서 이 집은 집주인의 발에만 딱 들어맞는 ‘맞춤 구두’가 됐다.

얇디얇은집 전경.자투리 땅을 활용해 지어 올린 탓에 폭은 얇고 길이는 긴 독특한 집 구조가 완성됐다. /사진제공=이한울 작가




■좁고 긴 땅에 ‘맞춤구두’ 같은 집

폭 1.4~2m 불과한 ‘난감한 대지’

고정관념 깬 시도로 해답 찾아내

‘얇디얇은 집’이 들어선 잠원동의 67.7㎡의 대지는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완충녹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땅이다. 땅 주인인 건축주 부부는 이곳에 작업실과 생활공간을 갖춘 집을 짓고자 여러 건축사사무소를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폭이 좁아서 생활할 수 없고’ ‘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어서’였다. 이 땅은 녹지 방향 부분이 20m로 길게 뻗었지만 폭은 고작 1.4~2m에 불과한 특이한 구조였다. 건물을 올려도 벽 두께와 이동 공간을 감안하면 의자 하나 놓기도 빠듯했고 3m인 주차장 출입구의 최소 너비를 맞추기는 아예 불가능했다.

‘1대10’이라는 기형적인 세장형 비율은 달리 생각하면 기존 집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소재이기도 했다. 신 소장은 우선 현실적인 한계치를 가늠해 건축주에게 제시한 뒤 집을 짓겠다는 의지를 다시 확인했다. 사무실 바닥에 내부 공간을 일대일 크기로 표시해 직접 설명하고 건축 규모를 계산해 제시했다. 주차장은 설치 예외조항으로 설치의무를 면제받아 해결했다. 건축주는 용기를 냈고 건축가는 답을 찾기 시작했다.

건축물의 이름처럼 이 집은 ‘얇디얇은’ 공간이다. 건축면적은 34.5㎡에 불과하지만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올리면서 연면적을 140㎡까지 끌어올렸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42평 정도다. ‘얇은’ 것은 맞지만 ‘협소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여러 층을 묶어 수직적 공간 구성을 완성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건축 과정에서 다양한 설계 아이디어가 활용됐다. 계단에 대한 계획안만도 10여 개 이상의 검토가 이뤄졌다. 근린생활시설과 단독주택으로 구분된 용도를 고려해 출입구 위치도 다양한 옵션을 검토했다. 협소주택 설계에서는 외관의 형태와 모습을 고민하기 전에 내부 공간 구성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중요했다.

얇디얇은 집의 실내 모습. 공간이 좁다 보니 이동 동선을 고려하고 남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진제공=이한울 작가


■역발상으로 풀어낸 공간부족

가구 등 리스트 만들고 꼼꼼히 실측

수납공간 늘리는 대신 물건 수 줄여



어떻게 설계해도 좁은 공간에 물건을 채워 넣으면 절대적인 공간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었다. 좁은 폭에서 이동 공간을 빼고 남은 공간만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역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수납할 공간이 부족한데 억지로 수납공간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수납할 물건 자체를 줄이기로 했다. 우주왕복선에 실을 물건을 우선순위에 따라 최대한 줄여나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건축주와 머리를 맞대 생활과 작업에 필요한 물건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담을 수 없는 물건은 모조리 뺐다. 꼭 들어가야 하는 제품들은 제조사의 모델명을 확인하고 ㎜ 단위까지 제품 크기를 확인해 낭비되는 공간이 없도록 치밀하게 계획했다.

이 과정을 위해 건축가는 건축주가 소유했거나 소유하려는 물건 정보를 모두 공유했다. 가전제품·가구의 종류와 개수, 소유한 옷·책의 분량, 집에서 어떤 생활과 활동을 할 것인지 등등. 설문지를 통해 리스트를 작성하고 꼼꼼하게 실측했다. 이럴 때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호흡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건축주는 요구하는 조건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확하게 제시하고 건축가는 이를 최대한 담아낼 계획을 고민했다.

건축주가 요구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서쪽 완충녹지를 접한 긴 벽면에 채워질 ‘창’에 관한 것이었다. 창을 너무 많이 만들거나 크게 계획하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나타날 수 있었다. 바깥에서 보면 ‘얇디얇은 집’의 창은 층마다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다. 층과 공간별로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 건축물인 만큼 공간별로 사용하는 목적과 행동을 감안해서다. 앉거나 눕거나 서 있는 생활 방식에 따라 창은 모두 다른 이야기로 계획됐다.

얇디얇은 집의 실내 모습. 녹지에 접한 창은 공간별 목적에 맞춰 구성됐다. /사진제공=이한울 작가


■특징을 장점으로 만든 외관설계

건물 양 끝으로 쫑긋 세운 귀모양

좁은 폭 의도적으로 드러내 더 눈길

녹지를 마주 보고 도로에 접한 이 집은 외관도 인상적이다. 녹지 사이로 바라보면 앙증맞게 얼굴을 살짝 내밀어 인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건물 양 끝으로 쫑긋 세운 귀가 특히 인상적이다. 도로 쪽에서 보면 좁디좁은 폭이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특징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러내자’는 의도에 따른 결과물이다. 귀 부분의 높은 부분과 이어지는 옥상 테라스 부분은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난간을 사선으로 처리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형태의 독특함은 기술적 어려움을 동반했다. 게다가 규모에 비해 층수가 많은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단위면적당 공사비가 비쌌다. 대신 단가는 높지만 공간 효율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다양하게 차용됐다. 마감 두께는 얇고 단열 성능이 높은 외단열 시스템을 적용했다. 내부는 별도 마감을 최대한 줄여 벽면 두께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실내공간의 높이를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천장도 설치하지 않았다. 신 소장은 “무엇이든 줄이는 선택을 했다”고 했다. 그는 “토지주의 목적에 따라 땅은 가치를 발현할 수도 있고, 나대지로 방치될 수도 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땅은 잘못이 없습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나무 사이로 보이는 얇디얇은 집 전경. /사진제공=이한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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