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3월13일 새벽 3시50분 미국 뉴욕주 퀸스 큐 가든스. 바텐더 겸 지배인으로 일하던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사진)가 퇴근 도중 칼에 찔려 죽었다. 범인은 같은 나이의 흑인 윈스턴 모즐리. 착실한 회사원으로 아내와 세 자녀가 있는 가장으로 전과도 없던 그는 6일 뒤 절도 혐의로 체포돼 여죄까지 불었다. 가족이 잠든 밤에 거리로 나와 30~40건의 절도 행각을 벌이고 다른 두 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욕보인 사실도 드러났다. 사건 발생 보름 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사건의 실상은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살인을 목격한 37명 중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제노비스는 세 차례나 칼에 찔렸다. 새벽 3시15분, 첫 비명을 들은 아파트 주민들은 지켜만 봤다. 누군가 ‘그만두라’고 소리치자 모즐리는 도망쳤다. 쓰러진 제노비스를 아무도 돕지 않자 모즐리는 돌아와 또 찔렀다. 비명 소리에 아파트 창문들의 불이 켜지자 또 숨었다. 제노비스가 힘겹게 아파트로 기어가는 순간 모즐리가 나타나 더 찌르고 몹쓸 짓까지 저질렀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38명이었지만 누구도 구출하지 않았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제노비스는 이미 숨져 있었다.
여기까지가 보도된 사건의 전말. 세 차례 폭행이 35분간 이어지는데도 구조하지도, 경고하지도 않은 현실에 ‘냉혹한 도시’ ‘사라진 시민정신’ ‘인간성의 소멸’ 등의 후속 보도가 잇따랐다.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이라는 새로운 심리학 용어도 생겼다. ‘구경꾼 효과’로도 불리는 이 용어는 ‘누군가 이미 경찰을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 비극을 불렀다는 것으로 제노비스 사건은 ‘다원적 무지 이론’과 함께 아직도 범죄심리학의 주요 사례로 남아 있다. 문제는 오보였다는 점.
충격으로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던 동생의 끈질긴 진실 추적 결과 실제 목격자는 6명이며 2명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이 2007년 밝혀졌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 기사를 냈다. 정작 오보의 당사자인 사건 데스크는 연이어 제기되는 의혹을 부인한 채 편집국장·칼럼니스트로 승승장구하다 오보가 완전히 드러나기 직전인 2006년 죽었다. 범인 모즐리도 2016년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사건 발생 56주년, 미국이 아니라 악에 무감각한 우리를 돌아본다. 왕따를 당한 채 린치로 죽어가는 동급생을 외면하는 청소년, 오보에 책임은커녕 가짜뉴스를 생산해대는 언론…. 방관은 구조적인 악을 낳는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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