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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편집국장을 쏜 장관 부인

1914년 르 피가로의 비극





1914년 3월16일 프랑스 파리 ‘르 피가로’ 신문사. 저녁 6시께 편집국장실을 방문한 한 여성이 말을 꺼냈다. “가스통 칼메트 국장이시죠? 조제프 카요의 부인 앙리에트입니다. 제가 왜 찾아왔는지 아시나요?” 앉으라고 권유하는 찰나 앙리에트는 모피 토시에 감췄던 32구경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6발을 모두 쐈다. 4발을 맞은 칼메트가 쓰러지고 신문사 직원들이 몰려와 붙잡자 여성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팔 놓으세요. 나는 숙녀예요!” 팔이 풀리자 옷매무새를 고친 여성은 당당하게 경찰을 맞았다. 칼메트(당시 56세)는 피격 6시간 후 병원에서 죽었다.

경찰 호송차 탑승을 거부하고 운전사가 딸린 자신의 차로 이동해 유치장에 수감된 앙리에트(40세)는 전직 총리이자 현직 재무장관인 카요(49세)의 부인. 장관 부인이 왜 신문사에 찾아와 편집국장을 쏴 죽였을까. 악의적 보도 탓이다. 급진당 소속인 카요 재무장관이 소득세 도입을 강행하자 우파 매체인 르 피가로는 석 달 전부터 정책이 아니라 사생활을 들춰왔다. 결정적으로 3일 전 보도가 살인을 불렀다. 카요 장관이 전처 베르트 게이당과 사귀던 시절 연애편지까지 지면에 내보냈다.



문제는 연애편지를 받은 게이당이 고위관리의 아내이며 애도 딸린 유부녀였다는 점이다. ‘남의 부인을 꼬셨던 불륜 정치인’이라는 도덕적 흠집을 내려는 기사는 독자의 관음증을 자극하고 앙리에트의 분노를 자아냈다. 둘째 부인인 자신도 남편과 아이 셋이 있는데도 불륜으로 시작한 케이스. 카요의 첫 결혼 직후부터 관계를 맺어오다 카요 부인이 됐다. 앙리에트는 남편이 결투라도 치러주기를 바랐으나 움직이지 않자 칼메트를 직접 쏴 죽였다. 전대미문의 사건은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신문들은 카요 부인 재판을 둘러싼 기사를 경쟁적으로 실었다.

재판 결과는 무죄. 변호사의 명성에 현혹됐는지 배심원단은 ‘이성적 판단 능력이 결여되고 감정을 통제 못해 어린애처럼 예측불허의 행동을 하는 여성에게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평결을 내렸다. 변호인은 페르낭 라보리. 독일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썼던 유대인 출신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와 그를 옹호한 에밀 졸라를 끈질기게 변론해 무죄를 받아냈던 변호사다. 카요 부인 앙리에트는 과연 비이성적이었을까. 늦게 조각을 공부해 학위를 받고 책까지 냈다. 여성에 대한 편견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카요 부인은 프랑스 현대사에 한 가지만큼은 깊게 새겼다. 악의적 보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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