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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서울 아파트 '나홀로' 규제…박원순표 '35층 룰'은 금단의 벽인가

■아파트 스카이라인 이대로 괜찮나

'2040서울플랜' 올 상반기 윤곽…재건축 40만 가구 영향

경관·도시계획 심의로 높이규제 가능, '주거 선택권 제약'

찬반 논란 많아 이번엔 백지상태서 공론화 과정 거쳐야

"용적률 상향-공공기여 확대 '빅딜' 유연성 발휘"지적도

서울 한강 남단 올림픽대로를 따라 병풍처럼 둘러쌓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서울시가 아파트 층고 35층 제한룰을 담은 ‘2030서울플랜’을 대체할 ‘2040서울플랜’을 올해 중 마련할 계획이어서 박원순표 스카이라인 규제정책의 변화 여부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 강변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눕혀놓은 직사각형 아파트 건물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마포구에서 광진구까지 북쪽 조망은 아파트 장벽에 차폐되다시피 했다. 지어진 시기에 따라 높이는 다르지만 아파트단지별로 같은 외관, 같은 층수의 건물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스카이라인은 한강이라는 천혜의 경관이 가진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들어선 건물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앞으로 재건축·재개발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0년 넘은 노후아파트는 서울에만 40만여가구에 이른다. 아파트 네 가구에 한 가구꼴이다. 성냥갑 아파트 동(棟)수를 줄이는 대신 위로 길게 세운 마천루 형태라면 어떨까. 옥외공간이 늘어나면서 개방감은 커질 것이고 단지에 가린 뒤쪽 주거지역의 조망권이 개선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높이 장벽에 가로막혀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서울시의 장기 도시계획 구상인 ‘2030서울도시기본계획 (2030서울플랜)’ 에 따른 층고 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행 ‘2030서울플랜’에 따른 높이 기준은 용도지역에 상관없이 주거용 건물은 35층 이하, 주상복합 건물은 50층 이하로 각각 제한돼 있다. 다시 말해 재건축 때 35층 초과는 ‘넘사벽’인 셈이다.

아파트 ‘35층 룰’을 깬 예외는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렉스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첼리투스의 최고층은 56층이고 성동구 성수동 트라마제의 최고높이는 47층이다. 강북 강변도로에 접한 이들 아파트의 마천루 개발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대1 방식으로 재건축한 서울 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 15층짜리 10개동이 36·41·56층 3개동으로 변모했다. /사진제공=삼성물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의 접근성을 높이고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아파트의 50층 건립을 허용하고 대신 개발면적 일부를 공원 등으로 기부채납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때 지구단위의 계획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한 곳이 여의도와 이촌·합정·압구정·성수 등 5곳이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취임하면서 한강 르네상스 구상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두 아파트만 기한 내 인허가를 받아 완공됐고 구역단위로는 성수동 일원 4개 지구( 53만㎡ ·16만 평)만 정비계획이 수립되면서 유일하게 통합개발 후보지로 남았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2011년 1월 서울 한강 주변의 전략정비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20년 뒤를 내다보고 도시계획의 큰 틀을 짜는 2040서울플랜의 중간보고 시점이 다음달로 다가오면서 35층 룰의 운명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플랜은 서울의 미래공간 구조와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도시계획으로 토지 이용 및 보전과 관련한 정책의 기본골격이 된다. 이 계획은 기존의 2030서울플랜을 대체하게 된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사태로 다소 유동적이기는 하나 상반기 중 플랜 공개와 오는 9월 공청회를 거쳐 연말에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박 시장은 35층 룰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에 대해 “시민 참여로 만든 헌법 같은 것”이라고 했지만 법률적 논란이 없지 않다. 용도지역별 건축 규제를 담은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일반주거지역에서 층수 규제는 1종과 2종에 국한된다. 개발밀도가 낮은 1종의 높이 규제는 최고 4층이고 2종의 경우 조례(서울시는 25층)로 정한다. 이에 비해 3종 일반주거지역은 건폐율과 용적률 규정만 있을 뿐 높이 규제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정재웅 서울시의원은 높이 규제를 공론화하자며 의회 차원에서 35층 룰에 대한 여론조사를 주도했다. 도시공학박사인 그와의 일문일답.

정재웅 서울시의원


-35층 룰이 왜 문제인가.

△주거선택권 같은 국민기본권을 상당 부분 제약한다. 경관 심의와 도시계획 심의를 거치기 때문에 무리한 높이 계획은 위원회 차원에서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

-고밀 개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높이 규제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두 동 지을 것을 한 동만 올리면 성냥갑·병풍 아파트보다 낫다. 주변 환경과 밀도 등을 고려해야지 일괄 규제는 곤란하다. 난개발 방지 못지않게 도시 경쟁력 확보도 중요하다.

-박 시장은 35층 룰을 “헌법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 35층 규제를 조례로 정했다면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의회가 동의하지 않을 것 같으니 서울플랜에 35층 룰을 담은 것이다. 미래 구상인 도시기본계획에 이렇게 세세한 규제를 두는 것은 지나치다. 과거에도 없었고 부산과 대전 등 다른 광역시에서도 없는 ‘나 홀로’ 규제다.

-35층 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왜 공개하지 않는가.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다. 선거가 끝나면 공개할 것이다.

지난해 4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잠실5단지 재건축 승인 촉구를 위한 조합원 궐기대회. 50층 재건축이 무산되자 조합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서울경제DB


‘박원순 룰’에 속이 타는 곳은 재건축·재개발조합이다.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 5단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이 50층 건립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35층 룰에 막혔다. 이들은 가뜩이나 분양가격통제·초과이익환수제 같은 중첩 규제를 받는 상황이어서 층고 규제만이라도 풀어달라고 하소연한다. 용적률을 그대로 둔 채 높이 규제만 풀려도 사업성을 그나마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망권 프리미엄’ 효과다. 실제로 2017년 완공한 47층짜리 성수동 트라마제 아파트의 가격은 층수가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같은 38평형이라도 저층보다 고층이 5억원 정도 비싸다. 물론 층고 제한 옹호론도 있다. 층수를 높여 얻을 이득은 입주민의 몫이고 부정적 효과는 시민 전체에게 돌아간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초고층 돌출 아파트가 도시계획의 균형과 위계를 무너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20년 뒤 수도 서울의 미래공간 구조 골격을 짠다면 이제는 도시 경쟁력을 높이도록 대담한 계획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이현석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은 “도시는 포용력이 있는 공간이어야 발전한다”며 “서울시는 퇴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칸막이처럼 나뉜 용도지역 규제의 탄력적 운영과 주거·비주거시설의 복합개발 확대 등을 주문했다. 이정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건축을 억제하고 해법을 미룰수록 새 아파트의 희소성이 커지고 개발 압력은 높아질 것”이라며 “강남 고밀 재건축이 정답이지만 정 부담스럽다면 용적률 상향과 공공기여율 확대라는 ‘빅딜’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3년 9월 ‘2030서울플랜’을 설명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서울시에서는 최근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서울시가 지난해 높이 관리 정책에 대한 용역에 착수한 것이나 비록 무기 연기하기는 했지만 2018년 7월 여의도와 용산 통째개발 구상을 내놓은 데도 도시 경쟁력 강화 차원의 고심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무엇보다 2040서울플랜이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휘발성이다. 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개발구상 발표로 잠잠하던 집값에 불을 지핀 아픈 기억이 있다. ‘헌법 같은’ 스카이라인 원칙 훼손도 부담이다. 권기욱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35층 제한이 큰 변화를 줘야 할 정도로 문제 있는 정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일각에서는 35층 일괄규제는 그대로 둔 채 거점지역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절충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발표시점도 집값 안정세가 확인된 뒤거나 아예 내년으로 연기할 공산을 배제하지 못한다. 정재웅 서울시의원은 “35층 룰은 워낙 논란이 많아 이대로 가기 어렵다”며 “이번에는 백지 상태에서 누구나 수긍할 만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3종 일반주거지역이 뭐길래…

재건축 층고 문제의 진앙지로 도시지역 내 일반주거지역의 한 유형. 주거지역은 전용·일반 ·준주거지역으로 구분돼 있고 일반주거지역은 다시 1·2·3종으로 나뉜다. 뒤로 갈수록 개발밀도가 높다. 2종 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과 용적률은 각각 60%와 150~250%, 3종은 50%와 200~300% 내에서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게 돼 있다. 아파트가 들어선 곳은 2종 또는 3종 주거지역으로 보면 된다. 일반주거지역의 종(種) 구분은 원래 없었다가 2000년 7월부터 주거지역의 효율적 이용과 보전을 위해 세분화됐다. 재건축·재개발 사업 때 2종 지역을 3종 지역으로 변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종 상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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