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더욱 힘든 올봄에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희망을 가져다주는 정당은 과연 어디일까. 코로나19 사태로 4·15총선 표심이 안갯속에 가려져 있어서 선거의 승패를 점치기 쉽지 않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를 넘으면서 선거 승부를 가르는 부동층의 속내를 파악하기는 더 어렵다.
부동층 즉 스윙보터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유명한 정치경제학자인 앤서니 다운스의 책을 다시 펼쳐봤다. 다운스는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유권자는 선거 이후 즉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정당과 후보를 선호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합리적 유권자’의 투표행태 공식도 만들어냈다. ‘여당이 승리할 경우 기대효용에서 야당이 승리할 경우 기대효용을 뺐을 때 그것이 플러스(+)이면 여당에, 마이너스(-)이면 야당에 각각 투표하고 0이면 기권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층 표심은 이념이나 과거에 대한 평가보다는 미래 경제 전망과 경쟁 정당·후보 간 비교에 의해 더 좌우된다는 뜻이다.
다운스 이론을 음미해보면 선거 여론조사의 의문점이 풀린다. 최근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경제 상황에 대해 질문하면 ‘나빠졌다’는 응답이 ‘좋아졌다’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총선 지지 정당’을 물으면 야당보다 여당이 더 높게 나온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경제 전망을 근거로 지지 정당을 선택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곧바로 ‘정권 심판론’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경제 위기를 극복할 대안세력으로서 야당을 아직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다운스 이론을 현실에 접목해 46세의 나이에 대권 고지에 올랐다. 지난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걸프전에서 승리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재선을 낙관했다. 당시 도전자인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 i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클린턴은 경기침체 상황에서 경제 실정을 부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새로운 중도 노선을 제시하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리더로 부각시켰다. 클린턴은 취임 후 ‘민간부문 활성화’와 ‘작은 정부’의 결합으로 경제를 살리고 실업률도 크게 떨어뜨렸다.
한국 총선에서도 다운스 이론은 그대로 적용된다. 유권자들은 총선 이후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잘살게 해줄 수 있는 정치세력을 고를 것이다. 그러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연 결자해지 차원에서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무리하게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여 경제위기를 초래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강행 등으로 기업들이 흔들리면서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성장률이 2% 턱걸이에 그쳤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순이익 합계는 1년 전에 비해 52%나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이미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온 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 대전환이 없으면 경제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새로 영입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맡겼다. 김 위원장은 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낸 뒤 ‘실세 경제 총리’를 해보고 싶은 꿈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는 먼저 ‘경제 실정 심판론’을 제기했다. “이런 나라 두 번 겪으면 큰일 난다”면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외친다. 또 올해 예산 중 20%를 재조정해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100조원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내일의 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수권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포석이다. 통합당의 운명은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살리기 비전을 제시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엘리엇은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다”고 했다. 결국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 분야에서 꽃을 활짝 피우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총선 승리의 고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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