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 직원으로부터 저금리로 대출을 갈아타게 해준다는 전화를 한 통 받고 눈이 번쩍 뜨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손님이 뚝 끊기면서 폐업을 고민할 만큼 자금 사정이 어려웠던 A씨는 “대출 전환을 하려면 금융거래 실적이 필요하다”며 삼성카드 장기대출을 받으라는 권유에 의심을 품지 못했다. 대출금을 바로 지정한 통장에 송금해 상환하면 된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A씨가 카드 대출을 신청하자마자 삼성카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은행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는 경고 전화였다. A씨는 “삼성카드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했다는 것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이스피싱을 통한 금융 범죄가 여전히 횡행하는 가운데 삼성카드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전용 탐지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안팎의 다양한 데이터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보이스피싱만을 정밀하게 겨냥한 체계를 구축한 것은 국내 카드업계에서 삼성카드가 처음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카드는 이달부터 신용카드 대출(카드론) 승인 프로세스에 ‘머신러닝 기반 보이스피싱 전용 FDS’를 적용했다. 이 시스템은 모든 거래에 대해 다양한 데이터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보이스피싱의 가능성을 점수로 산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카드 내부에 축적된 소득·신용정보 등 고객 관련 정보는 물론 실시간 거래 정보, 타사 대출 보유·연체 현황, 대출 수요 등 외부 금융데이터까지 활용한다.
사기 범죄 가능성이 높은 위험 거래는 삼성카드가 미리 탐지해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기 전에 고객에게 알리고 피해를 막는 게 목표다. 범죄 방식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단속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금융 피해액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2016년 연평균 1,100억원 수준이었던 피해액은 지난해 6,398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수법까지 나타나고 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검·경찰, 금융기관, 지인·가족 등을 사칭하는 사기범에게 속아 고객 본인이 직접 개인정보나 돈을 범인에게 전달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특성상 일단 거래가 이뤄지면 금융사의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위험 거래를 사전에 걸러내 예방하는 것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개발 역량을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1월 프로젝트팀을 꾸려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뒤 4개월 만인 올해 2월 시스템 구축을 마쳤다. 지난 3월 한 달간 진행한 파일럿 테스트에서만 피해액이 4억6,000만원에 달하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했다. 카드론 승인 건 중 0.05%에 해당하는 고위험군에 대해서만 시스템을 적용한 결과다. 이는 3월 전체 보이스피싱 시도금액 12억원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삼성카드는 현금서비스 거래에도 시스템을 적용해 보이스피싱 탐지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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