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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코로나가 물꼬 튼 원격의료…'단계적 실시' 사회적 합의에 달렸다

[고광본 선임기자의 관점]

■'원격의료 시대' 열리나

의료계 등 기득권 저항에 한 발도 못 떼던 원격진료

정부, 코로나로 질환 상관없이 전화진료 '한시 허용'

환자편의·성장동력 확충 위해 부작용 최소화가 관건

해외 벤치마킹 필요…당정청도 조정 능력 발휘해야







# 대구에 사는 당뇨환자 김정국(65)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단골병원에서 전화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타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월24일부터 한시적으로 의료기관이나 질환에 상관없이 전화 처방이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단 코로나 환자가 아닌 경우에는 의약품 배달을 불허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화진료에 참여하지 않은 병의원이 대다수다. 서울 성동구의 송나영(20)씨는 목감기로 연 2~3회씩 다니던 동네 이비인후과에 전화진료를 문의했지만 “환자를 보지 않고는 처방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월 하순부터 이달 12일까지 50여일간 전국 3,072개 의료기관에서 10만4,000여건의 전화처방(13억여원)이 이뤄졌다. 전국에서 총 7만여개에 이르는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병원의 4% 이상이 전화진료에 참여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 만성질환자나 고령자를 중심으로 적절히 잘 활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5일에는 가벼운 감기환자나 만성질환자 등에 한해 화상진료나 대리처방 등도 허용하기로 했다.

# 코로나 경증·무증상환자를 치료하는 생활치료센터는 병의원 간 화상 원격의료를 보여줬다. 의료법에는 병의원 간 원격의료가 허용돼 있으나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연금공단은 최근 안산 중소벤처기업 연수원을 개조한 ‘경기 국제2생활치료센터’를 총괄 운영 중인데 최근 해외입국자 감염과 수도권 감염 확산 대비용으로 전환됐다. 고려대의료원 소속 의사들이 모바일앱으로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화상진료 시스템으로 진료한다. 96명이 입소해 23명이 완치됐다. 3월 초부터 경북 문경 소재 서울대병원 인재원에서 한달 이상 가동됐던 제3생활치료센터는 서울대병원 본원 의료진이 스마트폰 화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하도록 했다. 현지 의료진은 환자와 분리된 채 생활했으며 엑스레이 검사 등을 실시해 본원으로 전송한 뒤 이상 증세가 발생한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이송했다.

부작용 최소화, 단계적 정착이 관건

코로나 사태에 따른 ‘언택트(비대면)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원격의료 경험이 서서히 축적되고 있다. 이제 관심은 환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에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단계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느냐 여부에 모이고 있다. 원격의료는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 논의된 뒤 표류를 거듭해왔는데 이번 전화진료에도 95% 이상의 병의원이 참여하지 않았다. 원격의료는 그만큼 갈 길이 멀다. 원격의료는 원격진료와 원격 모니터링을 포괄한다. 환자가 있는 곳에 정보통신기술(ICT) 환경과 헬스케어 기기가 갖춰져야 한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시작된 5세대(5G) 통신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 기술이 성장하며 스마트 기기 발전도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앱으로 혈압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해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처럼 적잖은 원격의료 관련 의료기기가 허가됐으나 규제로 국내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변수는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다. 코로나 이후에도 원격의료가 단계적으로 실시될 경우 대한의사협회는 파업 카드로 위협하며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민단체나 민주노총도 ‘의료 민영화 우려’를 들며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한 중국 병원의 의사가 다른 병원의 의사와 원격의료에 관해 상의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은 물론 동남아도 원격의료 실시

그러나 해외의 다수 국가들에서는 원격의료가 허용돼 발전하고 있다. 특히 미국·중국·일본 등에서 원격의료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땅이 넓은 캐나다·호주는 물론 요즘 스마트폰 앱 활용이 크게 늘어난 동남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의료비가 비싼 것으로 악명 높은 미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원격의료가 시작돼 지금은 상당히 정착된 단계다. 미국 원격의료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텔레닥’은 화상·전화·인터넷으로 10분 내에 등록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 기업과 계약해 직원들에게 원격의료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2018년 총 2,280만명의 대상자 중 250만건을 원하는 시간에 1차병원 중심으로 연결했다. “직원은 건당 49달러만 내면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MD라이브’ ‘암웰’ ‘닥터’ 등의 업체도 텔레닥의 아성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용자가 앱으로 의사와 일정을 잡고 증상을 입력한 뒤 카드번호를 등록하면 화상·채팅·전화진료를 받을 수 있다. 처방전은 약국으로 전송되는데 의약품 배달도 가능하다. 원격의료 환자의 20%가량은 2차 소견을 받는다. 미국은 2014년 기준 진료 6건 중 1건이 원격으로 이뤄졌고 이후 계속 확대됐다. 올 초 미국에서 원격의료 앱을 내놓은 메디히어의 김기환 대표는 “미국에서 만성질환자뿐 아니라 20~40대 직장 경증환자의 진료 수요가 많다”며 “보험사와 연결된 원격진료비가 내원진료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2015년 초 서부 5개 성을 원격의료시범지로 정한 뒤 2016년 전국으로 확대했다. 땅이 넓으면서 의료 인프라의 불균형이 심한 중국은 원격의료를 위한 ‘온라인병원’이 300개 이상 될 정도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알리바바·바이두·징둥 등 11개사가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을 구축했다. 핑안굿닥터는 코로나 사태 기간에 가입자를 크게 늘려 11억건 이상의 상담이 이뤄졌다. 알리바바헬스는 해외 거주 중국인을 위해 무료상담 서비스를 했다. 원격의료 상담은 2025년께 2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의약품 배송은 허베이성 등 일부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 헬스케어 산업 조사업체 메디씨드의 신영종 대표는 “감염병 사태로 원격의료의 유용성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우리나라도 보험이나 의료사고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원격의료는 1997년 도서벽지 주민에게 시범실시된 뒤 2015년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전국으로 확대됐다. 섬이 많고 노인 의료비 지출이 증가해 골머리를 앓는 일본은 ‘온라인 진료’라는 명칭을 쓴다. 코로나 확산으로 13일부터 원격진료 대상을 6개월 이상 대면진료를 받은 재진환자에서 초진환자까지 확대했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에서 폐렴과 알레르기 질환까지 늘렸다. 그동안에는 처방전이 환자에게 배송됐으나 코로나로 의약품 배달도 허용됐다. 당초 참여 의료기관이 1~2%였으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병의원 참여가 많이 늘고 이용자도 2~3배 증가했다. 2018년에는 원격의료에 건강보험도 적용됐다.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헬스케어는 지난해 말 ‘라인헬스케어’를 출시하며 원격의료 시장에 뛰어들었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도 스마트폰 화상통화로 진료·처방을 받고 약 구입·배달이 가능한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당정청, 코로나 이후 원격의료 카드 만지작

국내에서도 당뇨·고혈압·심장질환 등 만성질환자나 노인·장애인들이 원격의료를 희망한다. 원양어선이나 군부대·교도소 등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원격의료로 환자의 의료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고령 시대의 노인 의료비 절감 효과와 함께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따른 창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국무회의에서 “급부상하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와 재택근무·원격교육 등 디지털 기반 비대면 사업을 적극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윤성로 위원장은 “더는 미룰 수 없다. 앞으로 원격의료를 공론의 장인 해커톤(끝장토론회)의 한 주제로 논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4·15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과 달리 원격의료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보이면 21대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이 추진될 수도 있다. 앞서 2010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2016년에는 도서벽지 주민은 물론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수술·퇴원환자, 노인과 장애인,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등으로 원격의료 대상을 넓힌 개정안이 나왔다. 주기적 대면진료를 전제로 원격처방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8년에는 군부대, 원양어선, 교정시설과 의료인이 없는 도서벽지 등에 한정하기로 해 범위를 좁혔다. 만성질환자와 노인·장애인 등이 제외되면서 2016년 안과 비교해 대상이 128만명에서 8만명으로 급감했다.

원격의료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계 염려 해소하는 정치력 발휘가 핵심

물론 의료계의 반대 주장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 환자를 직접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오진이 발생할 경우 의료과실인지 장비결함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사이버해킹에 따른 개인 의료정보 누출 염려도 있다. 정부가 1차 병원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하겠다고 누차 밝혔지만 나중에는 3차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의사협회 측은 “원격진료는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있고 의료 서비스의 질도 낮아지는 문제를 갖고 있다”며 “국민 편의와 진료비 절감만 내세우기보다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느냐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나 일부 시민단체들은 코로나 사태에서 공공의료 체계가 위력을 발휘했는데 자칫 의료민영화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은 “정부는 의료계를 집단이기주의로만 몰지 말고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며 “의사나 환자 모두 편리한 헬스케어 완성도를 높이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는 “일정 혜택을 받고 자신의 데이터를 내놓는 이용자부터 원격의료를 우선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당정청이 야당 및 의사들과도 잘 협의해 조정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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