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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이타미 준, 건축을 위해서라면 포기를 모르던 사람"

■ 딸 유이화 ITM유이화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기억하는 아버지

적당한 타협 없어...현장은 매일 해프닝

마지막 돌 하나까지 고민했던 천상 예술가

아버지가 사랑한 제주에 기념관 준비 중

ⓒJang Mi




“아버지는 경주타워 저작권 법정소송에 대해 끝까지 가자고 하셨어요. 그게 건축가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거든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에서 유이화(사진) 대표를 만났다. 유 대표는 이타미 준 건축가의 장녀로 현재 국내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 대표는 경주타워의 오픈을 기념한 신문 기사를 읽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신문에 경주타워 사진이 게재됐는데 우리가 출품한 투시도로 착각할 정도로 디자인이 유사했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패소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소송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본인이 아니면 누가 나서겠느냐며 ‘끝까지 가겠다’던 이타미 준 건축가의 의지 덕분이었다.

소송에서 엿볼 수 있듯 이타미 준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유 대표는 “생면부지의 관계자들이 모인 현장은 매일이 사연이고 해프닝이다. 적당히 타협할 만도 한데 아버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며 “현장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작품성을 위한 선을 지키신 것”이라고 회고했다.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타미 준은 딸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걸 찬스라고 생각하자 이화야. 계획대로 못하게 됐으니 더 좋은 아이디어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야.” 유 대표는 “시공사의 마지막 스태프가 철수하는 순간까지도 돌 하나라도 제대로 놓으려고 했던 분이었다”며 “다시금 생각해도 아버지는 정말 천상 예술가였다”고 말했다.

학창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건설 현장을 다니며 통역일을 했던 유 대표는 건축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을 지근거리에서 보며 건축가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러나 정작 이타미 준은 딸의 꿈에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유 대표는 “집안 분위기가 워낙 보수적이었다. 이화여대 가서 시집 잘 가라고 제 이름을 이화라고 지었을 정도니까. 내가 하도 고집을 부리니까 그제야 이대에 건축과가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 가장 비슷한 과로 실내환경 디자인과가 있었고 겨우 건축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건축가가 된 유 대표는 이제 아버지를 위한 기념관을 준비하고 있다. 부지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저지예술인마을에 있는 땅을 공모로 불하받았다. 496㎡(약 150평) 규모의 작은 기념관으로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유 대표는 “내년 10주기를 맞이해 부분 개관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일정을 조금 늦추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며 “기념관이 완공되면 이타미 준 건축상도 제정해 젊은 건축가 발굴에 일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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