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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반짝이는 금성' 지동설 증명의 중심에 서다

■별들과의 대화- 달 옆에서 밝게 빛나는 '개밥바라기별'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갈릴레오 금성의 변화 관측

중요한 지동설 증거 사례로 설명

오래전 지구와 대기 비슷했지만

온도 450도 혹독한 환경으로 변화

온실효과 겪는 지구의 과학자들

다시 '미지의 행성' 탐사에 나서

레이더로 본 금성의 표면 지도. 붉은색이 고도가 높은 산맥이다./NASA




요즘 달 근처에 ‘개밥바라기별’이 아주 밝다. 별명은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별은 아니다. 태양으로부터 두 번째로 가까운 행성인 금성이다. 망원경이나 쌍안경으로 관찰해보면 지금은 오른쪽으로 볼록한 초승달 형태를 하고 있다. 금성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들어오는 ‘내합’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금성은 몇 주에 걸쳐 점점 더 가느다란 초승달 형태가 됐다가 오는 6월 초 내합이 지나고 나면 왼쪽으로 볼록한 그믐달 형태로 바뀐 뒤 서서히 차오를 것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이러한 금성의 위상 변화를 지동설의 중요한 반증례로 들었다. 만약 지구가 중심에 있다면 금성이 태양 앞으로 와 큰 ‘초승금성’이 됐다가 태양보다 멀리 가서 작은 ‘보름금성’이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동설을 받아들일 때만 금성의 위상 변화를 잘 설명할 수 있다.

금성의 위상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는 또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 늘 태양 주위를 맴도는 듯 보이는 금성이 그나마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최대이각을 이룰 때는 반원 모양으로 보인다. 기하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 시기에 관측하면 ‘반금성’보다 조금 더 부풀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금성의 두터운 대기가 태양 빛을 산란하기 때문이다.

금성의 표면 기압은 지구의 92배에 달한다. 한때 과학자들은 금성이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깝지만 두터운 대기가 태양 빛을 가려 표면온도가 지구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물이 존재할 수 있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성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행성탐사 초기에 이러한 낙관을 하고 보낸 금성 탐사선들은 예상치 못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졌다.

금성 대기의 96% 이상이 이산화탄소다. 어마어마한 온실효과 때문에 표면온도가 450도에 달한다. 언젠가 아주 먼 옛날 한때 그곳의 물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모두 끓어오른 지 오래일 것이다. 납도 녹아버리는 지옥의 땅인 줄도 모르고 금성에 착륙한 소련의 베네라 7호는 도착한 지 30여분 만에 작동을 멈췄다. 이후의 착륙선들은 액체질소를 사용하는 냉각장치 등을 사용해 표면에서의 구동 시간을 늘려나갔는데, 그래 봐야 두 시간 남짓이었다. 지구와 닮은꼴 행성인 줄 알았다가 실망한 사람들의 관심은 차츰 화성으로 옮겨갔다. 외계 생명체나 인류의 이주를 염두에 둔다면 금성은 좋은 후보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금성 그 자체는 여전히 과학적으로 매력적인, 호기심을 자아내는 역동적인 행성이다. 금성의 두터운 대기는 시속 수백㎞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금성 자체의 자전보다 빠른 속도로 차등회전한다. 21세기 들어 금성을 방문한 유럽의 비너스익스프레스와 일본의 아카쓰키는 표면에 착륙하는 대신 금성 주위를 돌면서 두터운 대기 속 역동적인 금성의 구름층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자외선부터 적외선까지 여러 파장을 보는 카메라를 이용해 층층이 쌓여 있는 구름을 깊이에 따라 나눠 분석할 수 있었다.



자외선으로 본 금성의 대기.


가장 위에 있는 구름층이 유독 특이했다. 금성이 흡수하는 태양 에너지 총량의 절반 이상을 이 구름층이 가져간다.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금성의 대기를 연구하는 이연주 박사는 이 구름층의 근자외선 반사도가 10여년간 변화했음을 발견했다. 대기권을 가로지르는 어두운 띠가 때때로 커졌다가 작아지고 그 모양도 바뀌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구름 속 미확인 흡수물질의 양이 변하고 구름층의 반사도가 바뀌어 결국 금성이 흡수하는 태양 에너지의 총량 변동폭이 크게는 40%에 달했다. 금성은 원래도 ‘핫’한 곳이지만 더 뜨겁거나 덜 뜨거울 때가 있다는 것, 지구 밖 행성의 기후변화를 처음으로 찾아낸 것이다. 게다가 이 태양 에너지 흡수량의 변화가 대기의 차등회전 속도까지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과학자들은 다시 금성 탐사에 시선을 돌린다. 차세대 탐사에서는 열기구를 사용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궤도선에서 대기권을 내려다보며 관측하는 한편 열기구를 보내 상공 50㎞ 부근에 띄워 두는 것이다. 온도와 압력이 지구와 비슷해지는 고도, 그곳에는 어쩌면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가 짙은 구름 속을 부유해 다닐지도 모른다.

금성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 행성이며 크기도 지구와 견줄 만하다. 아주 오래전, 금성에도 지구처럼 바다가 있었고 대기환경도 지구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온실효과가 폭주하게 돼 바다마저 다 증발해버린 것일까. 혹시 그때 그 원시바다에 생명체가 있었다면 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미래에 지구도 비슷한 미래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아직도 금성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오늘 저녁에도 유난히 밝게 빛나는 우리의 자매 금성을 보며 지구라는 행성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비춰본다.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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