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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정자 뒤 송림에 조선 성리학 수백년 향기가...

■나무로 쓰는 역사이야기

-경북 예천군 초간정 소나무 숲과 '대동운부군옥'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퇴계 제자 권문해가 머물던 초간정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구상·집필

조선 성리학자 삶 녹아든 공간으로

정문·뒷문의 소나무숲 풍경 압권

선비의 절개·자연과의 소통 보여줘

경북 예천군 죽림리에 자리잡은 초간정.




조선시대의 정자(亭子)는 성리학자의 공부 공간이었다. 성리학의 공부는 중국 송나라 지배층인 사대부의 존재방식이었다. 송나라 사대부는 자신들이 지배층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존의 유가와 유교의 논리보다 훨씬 정교한 철학을 만들었다. 그들은 우주론·인식론·존재론 등과 같은 논리를 구축하면서 지배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공부의 목적은 타고난 본성을 구현하는 데 있었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에 중국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주희, 즉 주자의 철학을 수입했다. 조선은 성리학 중에서도 주자학 중심의 지배이념으로 통치했다.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은 주자학에 가장 충실한 자들이었다. 정자는 조선의 양반이 주자학을 실천한 대표적 공간이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정자는 조선시대 ‘정자문화’는 물론 성리학자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조선시대 정자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생태와 인문생태의 융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위치한 ‘초간정(草澗亭·명승 제51호)’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자다. 초간정의 별칭은 ‘초간정사(草澗精舍)’다. 초간정은 조선 중기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말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초간은 그의 호다. 전국의 많고 많은 정자 중 유독 초간정을 소개하는 것은 단순히 초간정의 아름다운 자연생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 권문해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는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과 더불어 퇴계 이황의 제자지만 워낙 김성일과 류성룡이 유명해서인지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직전 1589년 대구부사 시절에 만든 ‘대동운부군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다.

권문해가 중국 원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을 모방해 만든 ‘대동운부군옥’은 하마터면 세상에 나올 볼 수 없을 뻔했다. ‘대동운부군옥’의 ‘대동’은 우리나라를, ‘운부군옥’은 한자의 ‘운’에 따라 배열한 사전을 뜻한다. 권문해는 20권 20책으로 집필하면서 세 벌을 만들었다. 한 벌은 국가 차원에서 간행하기 위해 당시 부제학이었던 김성일에게 줬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한 벌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한강 정구에게 빌려줬으나 화재로 잃어버렸다. 다만 아들 죽소 권별이 이황을 모신 정산서원 원장으로 있을 때 보관한 한 벌은 남아 있다.

‘대동운부군옥’은 권문해가 작품을 만든 지 247년 뒤인 1836년에서야 완간됐고 그로부터 171년 뒤인 2007년에 한글로 번역됐다.

초간정 뒤에 서 있는 소나무 4그루.




1582년에 세운 초간정은 권문해가 ‘대동운부군옥’을 구상·집필하는 데 중요한 공간이었다. 아울러 그의 ‘초간일기(1580~1591)’는 보물 제879호다. 현재의 초간정은 1739년에 지은 건물을 일컫는다. 권문해와 그의 아들이 지은 것은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초간정은 금곡천(金谷川)을 바라보는 경관을 확보하기 위해 절벽 위에 지었다. 정자의 북쪽과 서쪽은 담장 없이 계곡에 바로 붙어 있다. 그래서 초간정은 정문을 통해 풍경을 감상하는 대부분의 정자와 달리 정문과 뒷문을 통해 풍경을 바라봐야 한다.

초간정 정문과 뒷문의 풍경에서 압권은 소나무 숲이다. 초간정의 구조상 뒷문을 먼저 감상해야 한다. 금곡천을 중심으로 조성한 뒷문 앞의 소나무 숲은 조선 선비의 절개이자 스승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초간정을 바라보면 소나무 숲이 초간정의 속살을 숨겨준다. 작은 다리를 건너 초간정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누워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발길을 멈추게 한다. 초간정으로 들어가서 마루에 앉아 우선 앞을 바라보면 아직 젊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정자 주변의 느릅나뭇과 갈잎큰키나무 느티나무는 회화나무 대신 심은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다. 느티나무 뒤편에는 모여 사는 소나무 4그루를 비롯해 소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소나무 숲은 초간정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공부 대상이었다. 그들은 소나무를 통해 자신이 하늘에서 받은 착한 본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초간정 마루에 올라 뒷문을 바라보면 또다시 소나무 숲과 마주한다. 뒷문을 통해서는 소나무 숲만이 아니라 참나뭇과의 상수리나무·떡갈나무 등도 만날 수 있다.

초강정 근처의 소나무숲.


초간정 앞 소나무 숲 근처에는 금곡천을 건너면서 계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만들어놓았다. 다리를 건너와 다시 초간정을 바라보면 숲에 안긴 초간정의 또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성된 초간정은 조선 성리학자들이 자연과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현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면 금세 인간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 좀 여유를 가지면 초간정에서 3㎞에 위치한 금당실 소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69호)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누릴 수 있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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