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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마요네즈, 전쟁 그리고 혁명

1756년 미노르카 전투

지중해의 섬 미노르카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은 마요네즈의 탄생과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에도 영향을 끼쳤다./위키피디아




1756년 5월 20일 아침, 지중해 미노르카 섬의 항구 마혼(Mahon) 앞바다. 영국과 프랑스의 소함대가 전열을 가다듬었다. 외형 전력은 비슷했다. 영국이 전열함 13척으로 프랑스(12척)보다 다소 앞선 것으로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본국에서 떨어진 지브롤터에 정박했던 영국 함대의 절반은 수리가 필요했던 반면 프랑스는 지근거리 군항인 틀롱에서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더욱이 영국은 함정끼리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결국 영국 소함대는 미노르카 수비대 구원을 포기하고 지브롤터로 돌아갔다.

겉으로만 본다면 함포전의 결과도 무승부. 영국 측 사상자는 210명(전사 42명, 부상 168명)으로 프랑스의 219명(전사 38명 부상 181명)보다 조금 적었다. 다만 내용에서는 영국의 완패였다. 함정들이 대파돼 지브롤터로 간신히 귀항하고 함장 중에서도 전사자가 나왔다. 무엇보다 섬의 수비대 구원이라는 애초 임무에 실패하고 말았다. 영국 존 빙 제독(52세)이 소집한 참모회의는 ‘섬의 요새 하나만 남기고 프랑스군이 이미 점령한데다 교전을 계속하면 지브롤터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퇴각했으나 섬의 수비대는 고립무원에 빠졌다.



마혼 항구의 영국 수비대가 6월 말까지 버티다 항복한 미노르카 전투는 역사에 세 가지 흔적을 남겼다. 먼저 마요네즈. 승리를 자축할 연회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던 프랑스군이 재료를 구하지 못한 채 급한 대로 계란과 올리브유, 식초와 소금을 아무렇게나 섞었더니 의의로 상큼하고 고소한 소스가 나왔단다. 마요네즈에는 ‘마혼의 소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두 번째는 사법 살인. 패장인 존 빙 제독은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형을 당했다. 영국의 변호사 출신 저술가 브라이언 해리스의 저서 ‘인저스티스(INJUSTICE)’에 따르면 영국 정부와 해군 본부는 안일함과 판단 잘못을 감추려 지휘관을 속죄양으로 삼았다.

무섭다. 6.25전쟁에서 두 번에 걸쳐 2개 군단 병력과 장비를 잃고 적전 도주 의심도 받았던 장군이 참모차장을 거쳐 국방장관까지 지냈던 한국적 경험에서 보자니 오싹하다. 세 번째는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 영국은 미노르카 상실에 끓어오른 국민감정을 가라앉히려 유럽과 북중미, 인도로 전선을 넓혔다. 경제사가 찰스 킨들버거가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불렀던 7년 전쟁의 방아쇠가 미노르카 전투다. 7년 전쟁의 패자 프랑스는 재정고갈로 대혁명을 겪었다. 승자인 영국도 전비 지출로 인한 빈 국고를 채우려 북미까지 세금을 매기다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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