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공백, 갈증 토해낸 연기 |
“이건 그냥 제복이 아니야. 이게 바로 나야. 내 피, 땀, 머리, 배짱으로 만든 거라고.” 그라운디드는 에이스급 전투기 조종사였지만 임신으로 비행을 금지당하고(grounded) 전투기 대신 군용 드론을 조종하게 된 여성 파일럿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던 그녀는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거침없이 누비던 하늘에서 내려온다. 아니 날개를 빼앗긴 채 끌어 내려진다. 창공에서 떨어져 발을 내디딘 곳은 라스베이거스 외곽 사막에 위치한 공군 기지. 창문도 없는 회색의 트레일러에서 군용 무인정찰기(드론)를 조종하는 게 그녀의 새 임무다. “드론은 축복. 난 축복 받은 거야. 다시 날 수 있는 거잖아. 비슷은 하니까.” 긴장감 가득한 12시간의 스크린 속 전쟁이 끝나면 퇴근 후 남편과 어린 딸이 함께하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12시간이 이어진다. 전장을 비추는 스크린 앞에 앉아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새로운 일에 점차 익숙해지는 듯 보이지만, 이 익숙함은 이내 ‘정신 착란’이라는 재앙으로 돌아온다. 상반된 두 일상이 반복될수록 두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전쟁의 폭력성에 스크린 밖 주인공의 삶도 지배당하기 시작한다.
극을 끌어가는 차지연의 힘은 압권이다. 그는 갑상선암 투병으로 1년간 떠나있던 무대에 대한 갈증을 토해내듯 90분 내내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텅 빈 무대 위에서 오로지 의자 하나만 가지고 드넓은 창공과 라스베이거스 사막의 공군기지, 안락한 침실을 그려냈고, 변화무쌍한 감정선을 오가며 주인공이 느낀 복잡한 감정을 오롯이 뿜어냈다. 때로 적막으로, 때로는 속도감 있는 대사로 몰아치는 열연에 관객도 주인공이 처한 치열한 상황에 빠져든다.
블루·핑크·회색‥色 통한 심리 묘사 |
연기와 연출은 기본이다. 여성, 전쟁, 기술 등 다양한 사회 이슈로도 확장되는 작품의 탄탄한 스토리에 짧은 공연기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다.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트의 희곡이 원작이며, 2013년 초연 이후 전 세계 19개국에서 12개 언어로 공연됐다. 2015년 뉴욕 공연에서는 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4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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