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재정을 화수분처럼 여기는 행태는 근본적으로 정책 결정에 대한 법적 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세금을 정책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니 나랏빚이 아무리 늘어도 겁을 내지 않는 것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았을 뿐이다. 지극히 추상적이고 느슨하게 돼 있는 탓에 정책 결정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하물며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재정전략회의조차 이제는 ‘국가채무 추인회의’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정에 대해 무감각해졌다.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에 새겨진 국가채무비율 목표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결국 재정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법은 국가채무의 한계를 법으로 강제화하는 길뿐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16년 국가채무의 총량과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5%와 3% 이내로 각각 제한하는 ‘재정건전화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새롭게 짜여진 21대 국회는 국가채무에 대한 상한선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담은 재정건전화법을 어떤 법보다 먼저 제정해야 한다. 정부가 예산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수당의 입김으로 선심성 예산이 편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중립장치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재정 포퓰리즘의 마약을 법적 구속장치를 통해서라도 끊어내지 않으면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도래할 때마다 나라 곳간을 자신의 주머닛돈 쓰듯 마구잡이로 꺼내 쓰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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