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을 ‘철학이 없는 의전 대통령’으로 비하한 것에 대해 청와대 전·현직 참모진들이 들고 일어섰다. 시인 출신의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시를 통해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었던 진 전 교수의 변절을 우회 비판했다. 답례시로 응수한 진 전 교수는 “그런다고 달이 태양보다 밝아지나”라고 반문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신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변형한 ‘빈 꽃밭’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려 “꽃(진보적 가치)을 피워야 할 당신(진중권)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라며 “꽃(진중권)을 잃고, 우리(진보 세력)는 울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가 연일 문 대통령과 여권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필사’로 불리는 신 비서관의 시는 문 대통령을 향해 “자기 의견이 없는 의전 대통령 같다”고 발언한 진 전 교수를 겨냥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지난 10일 국민의당 주최의 한 세미나에서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는 거고 탁현민(청와대 의전비서관)이 해준 이벤트 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문과 비교하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전 청와대 참모들은 즉각 호위에 나섰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자기가 보지 않은 사실을 상상하는 건 진중권 씨의 자유지만 그걸 확신하고 남 앞에서 떠들면 뇌피셜이 된다”며 진 전 교수의 발언을 일갈했다. 윤 의원은 문 대통령이 연설 대본을 수정하는 모습과 수정한 흔적이 남은 원고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우규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는 “말씀 자료 초안을 올렸다가 당신(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연필로 가필하거나 교정한 문안을 받아보고 어떤 때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안심도 하고 그랬다”고 자신의 경험을 밝히며 진 전 교수의 발언에 반박했다. 하승창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날을 세웠다.
격화됐던 언쟁은 윤 의원이 11일 새벽 “진중권 씨의 관심 전략에 넘어간 듯하다”며 진 전 교수의 막말에는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며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신 비서관이 이날 비판 대열에 동참하고, 진 전 교수가 신 비서관의 시를 변주한 ‘빈 똥밭’을 게재하며 설전이 지속됐다. 진 전 교수는 “청결을 향해 걷는 길에 아이(진중권)는 결국 청소하다가 지쳐 주저앉았지만 똥(진보적 가치)을 잃고도, 파리(진보 세력)들은 울지 않는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문 대통령을 ‘달’에 비유하며 비판을 이어갔다. 진 전 교수는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의 반격을 의식한 듯 “구름으로 가린다고 달이 더 밝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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