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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유족 특채' 단협 두고 大法서 칼날 공방… 사회적약자 배려냐 일자리냐

대법원, 단협 조항 위법성 여부 두고 공개변론 열어

사측 "'고용세습', 채용의 자유 등 재산권 본질 침해"

노측 "사회적 약자 보호 측면에서 공정 개념 생각해야"

25년 사이 사회질서 대한 '내로남불', 비혼직원 '차별' 가능성 등

대법관들 날카로운 질문도…"사망 근로자 자녀가 '사회적 신분'인가"

“민법 394조는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손해는 금전으로 배상한다고 규정한다. 일종의 원칙이지만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통해 그 외 방식으로의 배상을 허용한다. 산재사망 노조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 조항은 사망이라는 손해를 배상하는 취지라고 보는가” (김재형 대법관)

“해당 조항은 민법에서 언급한 ‘합의를 통한 다른 방법의 배상’이라 본다” (산재사망자 유족 측 법률대리인)

“유족 측의 독특한 견해라 생각한다. 일자리 문제와 손해배상은 다르다고 본다”(사측 법률대리인)



김명수(오른쪽) 대법원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산재사망 노조원의 직계비속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25년 된 단체협약 조항이 무효인지를 둘러싸고 유족과 현대·기아차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노사 양측은 특별채용의 성격에서부터 의견을 달리했다. 원고인 이씨 측은 이 조항이 사측의 귀책사유가 있는 손해에 대한 배상의 성격을 띠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공정의 개념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고용세습’ 조항이라며 기업의 기본권인 채용의 자유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공개변론은 현대차, 기아차에서 벤젠에 노출돼 일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려 숨진 이모씨의 유족이 기아차·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두고 열렸다. 그는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 그의 유족은 산재사망 노조원의 직계비속(자녀)를 특별 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 조항을 근거로 채용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증언대에 선 현대·기아차 측 법률대리인은 이 조항에 대해 “부모 찬스를 사용해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것”이라며 다른 청년 구직자를 차별해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산재 유족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는 주장에는 “그들이 실력으로 채용되면 특별수당을 지급해서 우대할 수 있다”고 반론했다. 반대로 유족 측은 “사회의 부가 한쪽으로 쏠리고 빈곤이 확대되는 상황”이라며 사회적 약자인 산재 유족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공정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아차는 산재 유족의 특별채용이 전체 채용 규모의 0.5%에 못 미쳐 청년 구직자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청년실업 문제는 대기업의 신규채용 축소가 원인인데 산재 유족에게 이를 전가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유족 측 참고인으로 나온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25년 전 단협을 맺고 2년에 한 번씩 갱신해 왔는데 이제야 기본권 침해를 들어 무효라 주장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모든 계약은 주고 받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측 참고인인 이달휴 경북대 교수는 “산재유족의 특채 조항은 기업의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며 “채용의 자유, 계약 선택의 자유 등 기업에 보장된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대법관들의 질의시간, 날카로운 질의가 연이어 제기되며 긴장감을 높였다. 시작은 주심인 김상환 대법관이 했다. 그는 “산재 유족의 특별채용은 연평균 2명 미만으로 전체 공채 규모에 비해 매우 적고 산재사망자가 줄어듦에 따라 더 감소할 수 있다”며 공정성의 침해 정도가 예상보다 적지 않은지 물었다. 이에 대해 사측 대리인은 “단협을 도입할 당시와 달리 일자리 하나하나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채용 공정성 원칙의 문제라고 응수했다.

박상옥 대법관은 단협 체결 당시와 현재 달라진 이른바 ‘공서양속’(사회질서)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과거엔 단협이 사회질서상 유효했고 지금은 무효라 하는데 사측의 주장에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25년 사이 달라진 사정이 뭔지 물었다. 사측 대리인이 간통죄의 위헌 과정을 예로 들었고, 박 대법관은 “간통죄와는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사측은 “당시 회사에선 이 조항이 어느 정도 해가 되는지 생각을 못한 것 같다”며 추후 보충설명을 서면으로 내겠다고 물러섰다.

민유숙 대법관은 특별 채용을 해줄 가족이 없는 비혼 직원은 단협의 조항 때문에 차별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권 교수에게 이에 따른 특별채용 조항이 정당한 근거를 물었다. 이에 권 교수는 “자동차 대공장의 가족 구성을 보면 대부분 성인 남성이 홀로 부양하는 체제”라며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하고 차별한다는 걸 상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 대법관이 “이 조항이 오래된 가부장제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면 현 가족제도에서 보호하려는 게 뭐냐”고 재차 물었다. 권 교수는 “부양”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기택 대법관은 재판의 주체는 아니지만 청년 구직자들의 입장이 재판에 반영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구직자들 대표도 법정에서 의견을 말하고 법정에서도 이를 참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청년세대의 꿈’이란 모호한 개념이 사법 판단에 들어오면 법적 안정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사측에는 장기간 유지돼 온 단협 조항이 무효화될 경우 당사자인 유족들에게 새로운 경제적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김선수 대법관 순서가 돌아오자, 논쟁의 긴장감은 더 높아졌다. 그는 현대·기아차 측이 ‘고용세습’, ‘일자리 대물림’이라는 표현을 반복하자 “사망 근로자 자녀를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회적 신분에 따른 특혜로 본다면 대기업 사주 자녀로 태어나서 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도 특혜라 공격해도 할 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가가 법률·행정명령으로 채용을 강제했을 때 진정한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 침해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단협 조항을 무효화한다고 일자리 몇 개가 더 생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측 대리인이 뒤늦게 반박하고자 했으나 답변 순서를 놓치는 바람에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당초 오후 4시경 종료될 예정이었던 공개변론은 오후 5시경에야 끝났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의 내용을 토대로 논의를 거쳐 추후 기일을 잡아서 선고할 예정이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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