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걸그룹 에이핑크로 데뷔해 아이돌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에 선 박초롱은 다시 신인이 됐다. 영화 ‘불량한 가족’을 통해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는 동시에 30대가 된 그는 “이제야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느낌”이라며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신인은 아니다. MBC 드라마 ‘몽땅 내 사랑’,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과 웹드라마 ‘로맨스 특별법’에 출연한 경력이 있지만, 이번 영화를 기점으로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다시 신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박초롱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주목받는 ‘불량한 가족’은 음악만이 유일한 친구였던 유리(박초로이)가 우연히 다혜(김다예)의 가출팸을 만나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가 연기하는 유리는 내성적이지만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고등학생이다. 아빠(박원상)와 단둘이 살면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바이올리니스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영화가 언론에 공개되고 박초롱에게 돌아온 평가는 혹독했다. 영화와 연기력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 생각을 안했다”는 그는 “스스로에게 다음부터 잘 하면 된다는 최면을 거는 중”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에이핑크 수식어를 떼고 박초롱이라고 소개하는 것조차 아직 어색하지만, 열심히 적응해나가는 중이라는 그를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영화가 공개된 소감은?
-마냥 좋고 설레고 떨리는 것보다는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생각이 많아졌다. 요 며칠 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고,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촬영은 물론 즐겁게 했지만, 막상 공개되고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가 나오는 걸 보니까 굉장히 어려운 자리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고등학생 연기는 어땠나?
-보는 분들이 불편해 하실까봐 걱정은 했는데, 캐릭터에 맞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연기 분야는 신인이라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봐주실지 모르겠다.
Q. 작품 선택하게 된 계기는?
-가족영화라는 소재가 좋았다. 처음에 작품 미팅 잡혔을 때는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가족영화이고, 박원상 선배의 딸 역할이라 해서 크게 부담이 없었다. 주연인지도 몰랐다. 감독님 만나 뵙고, 얘기를 듣고, 시놉시스를 보고 내용을 알게 됐다. 시나리오 읽었을 때 유리의 성격도 저랑 비슷한 면도 있었고, 영화 소재 자체도 부담스럽지 않아 출연하게 됐다.
Q. 극 중 유리와 실제 본인이 닮은 점은?
-나도 속마음 잘 표현 못했던 성격이고, 한때는 부모님이랑 떨어진 시간도 있었고. 혼자 스스로 힘든 걸 참아내면서 단단해지는 모습이 비슷한 것 같다. 유리도 영화에서 너무도 힘든 상황을 겪는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생일파티가 어떤 의도인지 알면서도 따라간다. 내색을 안 하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친구다.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Q. 학창시절엔 어떤 모습이었나?
-중학교 땐 도복만 입고 다녔다. 운동을 해서 학교 끝나고 무조건 합기도에 갔다. 그때도 말이 많고 활발하다고 하긴 그렇지만 학교에서 시범도 많이 하고 운동 쪽으로는 활발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가수의 꿈을 더이상 미루다가는 놓칠 것 같다는 생각에 뒤늦게 도전하게 됐다.
Q. 연기는 언제부터 하고 싶었는지.
-연습생 때도 연기수업이 있어서 진지하다기보다 재미있게 연습생 친구들이랑 수업을 받았는데 데뷔 초 때 시트콤을 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 해봤다. 솔직히 너무 데뷔 초이기도 하고 준비도 안 된 상태라 지금 보면 못 볼 것 같다. 그때 뭔가 현장이나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조금씩 막연하게 꿈을 갖게 됐다.
Q. 연기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재미를 느꼈나.
-감정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렵긴 한데 재미있다. 스스로 틀 안에서 억압하는 성격이다. 틀을 벗어나면 죄책감을 느끼는데, 연기할 때 만큼은 죄책감이 안들고 다른 사람이나 성격이 될 수 있다. 표현하는 자유가 많이 생겨서 그런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Q. 하고 싶은 연기가 있나?
-내가 갖고 있는 캐릭터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나 느낌을 각인시켜드리고 싶고, 그 이후에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다. 유리 캐릭터를 맡기 전에 얌전하고 말 없고 여성스러운 캐릭터를 했었는데, 나중에는 말도 많이 하고 몸도 많이 쓰는 그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Q. 이번 영화에서 어려웠던 감정 표현이 있었다면.
-감정이 막혀있는 캐릭터였다. 너무 과해도 안 되고 너무 안 드러나도 안되고. 중간점을 찾는 게 어려웠다. 원래도 속마음을 표현 못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초반엔 더 표현을 절제한다고 해야 되나. 감독님이 원하셨던 건 ‘분명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는 친구지만 그 상처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였다. 고민도 많이 했지만 되게 어려웠다. 차라리 표현을 하면 조금 나을 텐데, 절제를 하려니까 어렵더라.
Q. 본인 연기를 보면서 아쉬운 부분은 있었나.
-많이 있었다. 베테랑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보니. 영화를 볼 때 크게 못 보고 저한테만 시선이 가더라. 저때 내가 저렇게 했었나, 하나하나 따지게 됐다. 좋은 부분보다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안 되겠고 좀 더 표현을 하고. 많이 배웠던 것 같다.
Q. 본인을 향한 평가들을 수시로 확인하는 편인지.
-많이 본다.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더라. 연기에 책임감이 생기다 보니까 아예 주변을 차단할 순 없는 입장이고. 제가 보는 유리의 캐릭터와 대중이 보는 점이 다를 수 있잖나. 어떻게 느끼셨나 궁금하기도 해서 많이 보는 편이다.
Q. ‘불량한 가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생각이 많아지더라. 그런 평가를 혼자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낯설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평가를 내리시더라. ‘내 연기가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진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고,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원상 선배님이 ‘배우는 설득하고 공감을 시켜야하는 직업’이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이 정말 와 닿았다. 많이 배운 것 같다. 저도 스스로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다.
Q. 혹평에도 의연해 보인다.
-100% 평가에 의연해졌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의연해지는 중이다. 이제 막 경험 시작을 한 거다. 이 모든 게 낯설고, 부담도 되지만 지금부터 여기에서 주저앉고, 못 하겠다 이렇게 해버리면 아예 시작도 못할 것 같다. 스스로 최면 거는 중이다. 다음에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 인사드리면 되겠지라는 마음이다. 작품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이자 경험이라 생각한다. 용기 내서 연기를 시작한다고 마음 먹었을 때도 처음부터 탄탄대로 걸을 거라 생각 안했다. 너무 힘든 직업, 일이란 걸 알고 도전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연하게 넘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Q. 배우나 가수 중 롤모델은?
-좋아하는 선배님이 정말 많다. 엄정화 선배가 특히 멋있다. 가수로도 멋지게 무대를 하시고, 배우로서도 연기를 멋있게 두 직업을 병행하신다. 가수를 한다고 해서 배우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두 가지 다 너무 멋지게 해내는 걸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같은 네일샵에 다녀서 인사는 드린 적 있다.
Q. 아이돌로서 한계를 느끼거나, 불안한 점은 없는지.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 일단 아이돌로서 나이를 제일 걱정을 하시더라. 당사자인 나는 덤덤하다. 나이 먹어가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떻게 내가 나이를 먹어 가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시선과 걱정에 대해서는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바쁘게 살다 보니까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다. 에이핑크로서 지금까지 활동한 것도 감사하다.
Q. 20대는 에이핑크, 30대 배우로. 10년마다 새롭게 변신했다. 40대는 어떨까?
-연기로 자리를 잘 잡았으면 한다. 그때는 좀 더 저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표현을 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좋겠다. 그때도 지금처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계속 고민하면서 잘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Q.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로 인해 시국이 이렇다 보니 대놓고 영화 홍보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죄송하다. ‘영화 보러 와주세요’라는 말 보다는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다. 저희 영화를 좋은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고, 하루 빨리 코로나 시국이 끝나서 영화계도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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