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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집사게 하려다 산업도 사람도 망한다

[책꽂이-규제의 역설]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우윳값이 계속 올라 국민들이 살림에 타격을 입자 정부는 우윳값 상한선을 정하고 그보다 비싸게 우유 파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그런데 가격이 낮아지자 우유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정부가 정한 가격에 우유를 팔면 적자 날 게 뻔하자 목장 주인들이 우유 생산을 기피하고 시장에 우유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유를 찾아다녔고 우유 암시장이 생겨났다. 결국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비싼 값에 우유를 사야 했다. 이를 안 정부는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싼 우윳값으로는 젖소 사료 값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한 정부는 사료 가격을 낮췄다. 이번에는 시장에서 사료가 사라졌다. 목초 사료를 만들던 사람들이 사료를 내다 파는 게 손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젖소가 굶으니 우유 생산량은 더욱 줄었고, 우윳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빵·치즈·버터값도 덩달아 올랐다. 이것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1793년 급진파 자코뱅당을 이끌며 정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의 정책이다. “순수하고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이었던 그가 국민들이 싸게 우유를 살 수 있게 하려고 내놓은 ‘착한 정책’이 오히려 국민을 더 힘들게 만들었고, 그는 결국 국민들에 의해 쫓겨나 처형장으로 내몰렸다.

신간 ‘규제의 역설’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심각한 역효과와 부작용을 초래한 일련의 정책 사례를 여러 나라, 다양한 역사에서 찾아내 총망라했다. 저자는 정부의 법적 규제로 인한 현상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규제 전문가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윳 값 정책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다른 나라의 집값 정책도 한 번 살펴보자. 공산주의 국가였던 루마니아는 모든 국민이 ‘자기 집’을 갖게 하고자 했다. 원래 공산주의는 모든 주택을 정부가 소유하고 필요할 때마다 국민들에게 이를 배정하는데, 루마니아는 싼 가격에 주택을 판매하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 덕에 전 국민의 96%가 ‘내 집’을 갖게 됐다. 참고로 미국의 자가 보유율은 64%, 일본은 62%, 한국은 57%라고 한다. 온 국민이 집 걱정하지 않게 된 대신 건축업자들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게 됐다. 집 살 사람이 적어진데다, 새 집에 살고자 집을 팔려 해도 팔리지가 않아 시장이 멈춰버린 탓이다. 이사는 물론 직장 문제로 이동하려 해도 전·월세를 구할 수 없었고 도시 간 교류가 곤란해졌다. 지방근무자, 타 도시 진학생, 부모 집에서 독립하려는 젊은이들이 살 곳을 구할 수 없었다. 주택 구입과 매도, 신축과 분양 등 모든 것이 꽉 막혀버린 상황. 게다가 루마니아에서는 한 집에서 여러 세대가 이어 사는 까닭에 높은 ‘주거 혼잡도’와 극심한 ‘주택 노후화’ 문제도 심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가난한 사람들이 ‘내 집’에 살 수 있게 하려는 선한 의도로 정책을 폈다. 그는 은행의 까다로운 대출조건을 금융계의 차별로 보고 소득·직업·자산 없이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는 ‘닌자론(No Income, No Job or Asset Loan)’을 시행했다. 1990년대 말 닌자론으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집을 샀다. 그러자 주택 수요가 증가하면서 집값이 올랐고, 집값이 오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 집을 사는 데 나섰다. 이렇게 형성된 주택 버블은 2007년 한계에 도달했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런 역설적인 정책은 수두룩하다. 성매매 금지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집창촌은 없어졌지만 성매매 업소가 주택가로 숨어드는 풍선효과를 유발했다. 인터넷 상용화 초기에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인인증서 기술은 온라인 금융거래를 위해 도입됐으나 오히려 한국에서 온라인 금융과 쇼핑을 어렵게 하는 ‘이상한 절차’가 됐고 인터넷 보안이라는 본연의 목적에도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 실업자를 늘린 비정규직 보호법, 노동자들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최저임금제, 강사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온 대학 강사법 등도 마찬가지다.

규제와 정책이 실패하는 주요 이유는 그 규제가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무원들은 규제를 수정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나은 방향을 찾아간다. ‘규제의 역설’은 다른 성격의 문제다. 저자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하는 규제에 대해서는 미리 예상할 수 있다”면서 “단순히 부작용이 큰 규제가 아니라, 목적에 오히려 해로운 규제”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규제의 역설은 보통 그 위험성이 충분히 예상되고 미리 경고되지만 고집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며 “역설을 일으키는 규제는 대부분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말아야 하는 규제들”이라고 지적한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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