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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일변' 강경파에 번번이 발목 잡힌 민노총의 '흑역사'

DJ정권 때 노사정위부터 대화 무산

제1노총 등극에도 책임 외면

차기 위원장 '내홍수습' 과제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사퇴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4일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투쟁이 아닌 대화를 추진하면 소수 강경파가 반대해 결국 위원장과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징크스는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으로 구성된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총사퇴 방침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문이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면 즉각 사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날 온라인으로 개최된 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은 대의원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김 위원장은 “(합의안 승인을 추진하는) 한 달간의 과정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주노총이 통증을 앓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성장통이라고 본다”며 “100만의 민주노총만을 위한 민주노총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투쟁이 아닌 대화를 주도했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수난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환위기 때인 지난 1998년 배석범 위원장은 2·6 노사정 대타협에 정리해고제·파견제 도입이 포함되자 조합원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물러났다. 이듬해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2005년 이수호 위원장도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추진했지만 강경파의 반발로 실패했고 결국 같은 해 10월 물러났다.

반복되는 ‘사회적 대화 추진→위원장 사퇴’ 공식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역사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부터 시작된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1997년 12월 요청해 한 달 만인 이듬해 1월15일 발족된 노사정위원회에는 민주노총도 참여했다. 다만 정리해고제·파견제 도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불신’은 그해 2월6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의 잠정 합의안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배석범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합의안 승인을 위해 대의원대회를 개최했지만 난입한 해고자들에게 각목 세례를 받고 쫓겨났다. ‘정부의 요구 조건에 노동계는 구색만 맞추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회적 대화’라는 인식은 이때부터 이어졌다.

민주노총의 역사는 계파 갈등으로 인한 지도부 사퇴의 수난사와 함께한다. 1998년(왼쪽)과 2006년 민주노총의 노사정 참여를 놓고 계파 갈등을 벌이는 장면. /연합뉴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는 2004년 이수호 위원장 지도부 출범 이후 다시 시작됐다. 이 전 위원장은 2005년 2월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렸지만 토론 종결 여부를 투표에 부치자 강경파 대의원들이 의사봉을 뺏고 단상에 올라가 소화기를 뿌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이후 동력을 급속하게 잃은 ‘이수호 지도부’는 그해 10월 총사퇴했다.

경사노위 이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까지 실패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민주노총은 김명환 위원장 체제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꾸준히 시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안을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렸지만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전교조 등 강경파의 끊임없는 토론 신청으로 표결조차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표결에서는 참여안과 불참안이 모두 부결돼 ‘결정장애’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다만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2018년을 기준으로 민주노총의 총 조합원이 한국노총을 앞질러 ‘제1 노총’이 됐다고 발표하면서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지 말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고용위기 극복을 위해 이번 한 번만 경사노위 외에서 사회적 대화를 해보자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아이디어가 나온 배경이다. 한국노총의 반대에도 정부는 총리실에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꾸려 민주노총을 참여시키려 했지만 이번에도 강경파에 발목이 잡혔다. 1일 합의안 서명식에 참여하려던 김 위원장은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강경 조합원들의 사실상 감금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지도부 총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대의원대회에 승인안을 올리는 강수를 뒀지만 결국 이마저도 실패했다.

민주노총 강경파인 현장파의 비율을 노동계 안팎에는 10~15%로 추정한다. 투표로 당선된 위원장의 선택을 소수의 강경파가 좌절시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현장파가 민주노총 내 최대 정파인 국민파를 포섭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결국 정파 논리에 민주노총이라는 조직 전체가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가보지 못한 길”이라며 “곳곳에 넘어야 할 산이 많았는데 하나씩 다 넘어가는 데 있어서 집행부의 집행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는 ‘도로 경사노위’로


당분간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정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안의 이행 의사를 밝히고 의결하기 위해 다음 주 중으로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본위원회 위원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므로 민주노총을 제외한 사실상의 ‘5자 합의’ 체제가 꾸려지는 셈이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의 부결로 최종적으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종료됐다”며 “원포인트는 말 그대로 비상적인 방법이므로 경사노위라는 틀 안에서 사회적 대화에 대해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20일 의제개발조정위원회에서 경사노위 산하에 이행점검위원회를 속히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코로나19 고용위기가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어 “정작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곳에는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 합의가 적용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는 제조업에서 전년 대비 5만9,000명 감소해 1998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부문 고용보험 가입자를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월 2만7,000명이 감소한 후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동차·기계장비·기타운송장비(조선업 포함) 등에서 여파가 두드러져 기술 발전에 따른 추세적 구조조정에 코로나19가 겹쳐 어려움을 보였다. 자동차·기계장비·기타운송장비(조선업 포함) 사업장 노조는 대체적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사업장별로 양보 교섭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대차 노조에서도 고용 유지를 위해 임금 인상을 자제한다고 하니 희망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노총 차기 지도부 ‘좌클릭’ 대화보다 투쟁 가능성


지도부가 총사퇴함에 따라 민주노총은 연말까지 지도부가 공백인 상황에서 조직의 내홍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차기 지도부의 성격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민주노총 안팎에서는 ‘강경 좌클릭’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 승인에 표를 던진 대의원의 비율이 40%에 달하는 만큼 ‘제1 노총의 사회적 책임’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위원장 유고시에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민주노총 규약에 명시돼 있다”며 “이를 위해 중앙집행위원회 소집 공문을 시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오는 27일 열릴 예정이다. 김 위원장 사퇴 계획을 공식 추인하고 비대위를 구성하게 된다. 송보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비대위는 김 위원장의 남은 임기인 오는 12월까지 활동할 것”이라며 “차기 지도부가 들어설 내년 1월 전까지 관리를 맡는다”고 전했다.

차기 비대위원장의 가장 큰 과제는 내홍 수습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안의 찬성률이 38.3%나 나온 것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반대표는 805표로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등 강경파가 공개한 반대 대의원 810명에 모자란다. 결국 ‘사회적 대화’를 놓고 민주노총이 둘로 쪼개진 상황이 여실히 확인된 것이다.

민주노총 대의원회의에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안이 부결된 23일 저녁 김명환(오른쪽) 민주노총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 중구 사무총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비대위원장에 대한 하마평에도 민주노총의 내홍이 반영돼 있다. 차기 비대위원장은 산별노조 중 조합원 숫자가 17만6,300명으로 2위인 금속노조의 김호규 위원장이 유력하다. 조합원 숫자가 가장 많은 산별노조는 공공운수노조다. 하지만 이태의 공운노조 부위원장이 합의안 폐기를 주장한 상황에서 산하의 건강보험공단 노조에서 합의안 승인 토론회를 여는 등 내분이 심각해 비대위원장직을 가져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내년 1월 들어설 차기 지도부의 경우 대의원대회 표결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만큼 사회적 대화보다는 투쟁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이 포함된 국민파는 내상이 너무 깊고, 현장파는 인원이 적어 위원장직을 가져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중앙파 출신이 당선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다만 강경파가 집권하더라도 대의원회의에서 확인된 ‘제1 노총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지도부의 활동 반경을 제한할 것으로 전망된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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