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20일 오후 한때,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가 “문재인 내려와” “문재인 힘내세요”로 일제히 뒤덮였다. 일명 ‘검색어 챌린지(도전과제)’. 문 대통령 정책 지지자와 반대파가 부동산 과세 이슈를 두고 일제히 ‘총공(총공격)’에 나선 것이다. 네이버 ‘실검(실시간 인기 검색어)’이 각종 의견이 맞부딪히는 일종의 공론장으로 기능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의견이 과대대표돼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자출입명부 QR코드 기능 도입을 두고 카카오(035720)와 정부당국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보건복지부는 사용자 수가 많은 카카오톡 내부에 기능을 도입하기를 요청했으나, 카카오는 “메신저 본연의 기능과 충돌이 우려된다”는 기술적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사회적 시선이 부담됐을까. 카카오는 일주일 만에 입장을 선회해 QR코드 기능을 카카오톡 메신저 내에 도입했다.
3,559만명 그리고 3,016만명. 메신저 카카오톡과 네이버의 지난 6월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다. ‘국민 메신저’ ‘국민 검색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밖에 없는 규모다. 규모에는 책임이 따른다. IT 플랫폼 네이버와 카카오가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네이버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카카오톡 내부 QR코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실시간 검색어는 여론조작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오명을 써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포털의 정치적 중립성이 이슈로 떠오르자 다음 포털은 전격적으로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 자체를 폐지했다. 선거기간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네이버는 지난 4월 총선 선거기간 일시적으로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검은 광화문 같은 광장이 인터넷 상으로 옮겨온 것과 같다”며 “광장에서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의견을 표출한다고 해서, 이를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제재할 수 없듯 실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놀이문화’가 된 전광판 처럼 의사소통 방식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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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도입에 대한 갈등도 플랫폼의 공공성과 사기업의 정체성이 충돌한 사례다. n번방 방지법은 인터넷 기업에 불법 촬영물을 삭제·차단하고, 유통을 막기 위해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다. 이에 업계와 학계에서는 콘텐츠가 올라가는 ‘장(場)’을 제공했을 뿐인 IT 플랫폼이 성범죄의 책임까지 함께 지는 것은 가혹하다는 반발이 일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 사용자가 많아지고 덩치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공공성이 따라온 상황인데, 인센티브 없이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만 가중되면서 내부적으로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결국 인간의 직접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술에 의존하려는 플랫폼의 경향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실시간 검색어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개인화를 강화하는 정책을 적용했다. 네이버의 AI 시스템 ‘리요(Rank It YOurself·순위를 직접 매기세요)’는 ‘이슈별 묶어보기’, ‘엔터’, ‘스포츠’ 등 각 분류에 대한 선호도를 설정해, 이에 따라 다른 실시간 검색어가 노출되는 원리다. 양대 포털은 댓글란에 AI 알고리즘 기술을 도입해 ‘악플(악성 댓글)’을 자동 필터링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출범 10주년을 맞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밝히기도 했다.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는 “카카오가 하는 사업은 많은 사용자 삶속에 깊게 침투해있기 때문에 우리의 무관심으로 세상이 더 악하게 되는 걸 방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카카오는 지난달 운영정책에 성착취 관련 영상물·이미지 유통 금지를 명문화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IT 플랫폼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도 정부에서 여론을 등에 업고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협조를 요청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정용국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사기업의 자유가 일부 제한될 수 있겠지만,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판단 자체가 자의적”이라며 “조항과 근거가 있어야 기업 입장에서도 협조가 가능한데 매번 정무적 판단이나 여론의 압력에 의해 결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OSP(인터넷 사업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문제는 곧 사적 이익이 필요에 따라 어디까지 제한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OSP의 자발적인 선의에 기대기보다는 근거와 규정에 따라 정부·사업자가 행동할 수 있게끔 협조 범위, 인센티브 등 기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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