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국정농담] 강경화는 왜 뉴질랜드가 아닌 文에게 사과했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강경화, 靑이 지적하자 침묵 깨고 "국민께 송구"

국회선 "文에게 죄송"... 뉴질랜드엔 사과 거부

"사실관계 파악해야... 국가간 사과는 국격 문제"

"文정부 자가당착 요약하는 장면" 국내서도 비판

고소인 측 "실망" vs 윤건영 "뉴질랜드가 선넘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한국 외교관의 뉴질랜드 성추행 의혹 문제가 외교 갈등으로 번진 가운데 뉴질랜드 국민과 피해자에게는 사과하지 않겠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소신을 두고 국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강 장관은 대신 우리 국민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했는데 이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구설에 휩싸인 분위기다. 강 장관이 외교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태도를 보이면서 윗선에 ‘정치’만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강 장관의 이번 대응은 한미·한일·남북 등 현 정부 들어 엉킨 각종 외교적 갈등의 근원적 문제가 드러난 한 단면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靑이 꾸짖자 침묵 깬 강경화 “국민께 송구”

지난 24일 외교부 실국장회의.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2017년 말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발생한 성비위 사건이 지난 7월28일 정상통화 때 제기돼 우리 정부에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한-뉴질랜드 정상통화’에서 외교관 성추행 문제가 불거진 지 한 달여 만에 관련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을 연 것이었다.

강 장관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정상 간 통화에 이르기까지 외교부의 대응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이첩받았다”는 내용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강 장관이 입을 뗀 배경에서는 청와대 감찰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강 장관은 “외교부는 이를 검토해 신속히 적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앞으로 성비위 사안에 대해서는 발생시기와 상관없이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공정히’ 해결될 수 있도록 뉴질랜드 측과의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며 “다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본부 간부들과 공관장들이 더욱더 유의해 행실에 모범을 보이고 직원들을 지도·관리해나가라”고 당부했다.

이 사건은 외교관 A씨가 2017년 말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세 차례에 걸쳐 현지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A씨는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성추행 의도가 없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최근까지 필리핀 내 공관에서 근무하다가 이달 17일 보직 없이 본부 근무 발령을 받고 귀국했다.

해당 피해자는 한국 외교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외교부는 자체 감사를 통해 2019년 2월 A씨에 대해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피해자는 2019년 10월 뉴질랜드 경찰에 신고하는 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급기야 지난달 28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정상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언급하는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연합뉴스


“文에게도 죄송”... 뉴질랜드엔 사과 거부

뉴질랜드 성추행 의혹에 대한 강 장관의 대응 논란은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점을 찍었다. 강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까지 사과 의사를 밝힌 가운데 뉴질랜드 정부와 국민, 피해자에게는 사과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이날 “통화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뉴질랜드 측은 이 의제를 다룰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경위가 어쨌든 대통령이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된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가 외교에 큰 부담이었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국민들에게도 재차 사과했다.

다만 “뉴질랜드 국민과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는 “이 자리에서 사과는 못 드린다”고 답했다. 이 의원이 ‘국제적 망신’을 거론하며 “국민에게만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뉴질랜드 국민이나 피해자에 대해 사과할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강 장관의 답변은 “좀 더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였다. 강 장관은 “정상 차원에서 문제가 된 것은 외교적으로 이례적인 상황이고 피해자가 지금까지 한 얘기들이 언론에서 나오고 있는데 다 사실인지 아닌지,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처리하면서 우리의 국격과 주권을 지키면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께 사과하는 것은 분명히 국민을 불편하게 해서 사과하는 것이고 나라 간의 관계에서 상대국에 사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며 “의제가 되지 않아야 할 게 의제가 된 데 대해서는 뉴질랜드의 책임이 크고 외교부 장관이 다른 나라에 사과하는 것은 국격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강 장관의 이날 반응엔 절차와 관행을 무시한 뉴질랜드 측의 요구에 ‘굴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한 외교적 자존심이 깊게 투영돼 있었다.



A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뉴스허브 보도 장면.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 방송 캡처


“국격 거론은 文정부 자가당착”... 국내서도 비판 여론

강 장관의 이 같은 반응은 국내에서도 곧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해당 사안이 국가적인 범죄가 아닌 만큼 외교부 장관이 ‘사과’할 일은 아닐 수 있어도, 다른 나라 국가 원수가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외교적 예의’는 갖춰야 할 사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 장관이 “뉴질랜드의 책임이 크다”는 공식 발언을 하면서 양국 간에 불필요한 갈등이 깊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더욱이 뉴질랜드 성추행 의혹은 외교부의 지난 3년간 대응을 두고 뉴질랜드뿐 아니라 한국 내에서조차 그 불투명함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높았던 사안이다. 상대국에서 문제를 제기한 지 벌써 3년가량이 지났는데 아직도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건 우리 스스로 ‘국격’을 운운할 자격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해당 사건은 금융 범죄처럼 사안 자체가 대단히 복잡한 사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의 기준이 전혀 다른 나라에 우리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많았다. 일각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여권 인사들의 성추문 의혹이 잇따른 상황에서 현 정부의 인식이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전파된 사례라는 평도 나왔다. 무엇보다 강 장관의 사과가 청와대의 지적으로 비롯됐다는 점, 이후 뜬금없이 사과의 대상에 문 대통령이 포함됐다는 점은 비판 여론의 최대 표적이 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강 장관의 태도를 두고 “문재인 정부의 문제와 자가당착을 요약해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국격’을 들먹이는 장관에게 더 이상 기대도 할 말도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애정과 기대가 있을 때 비판에 대한 열정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허무함이 밀려온다”고 밝혔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고소인 “대단히 실망”... 윤건영 “뉴질랜드가 선 넘어”

강 장관의 잇딴 발언은 뉴질랜드 현재 매체들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특히 뉴질랜드 피해 고소인 측은 강 장관에 대해 즉각 큰 실망을 표시했다. 강 장관이 자국민에게만 사과를 하고 피해 고소인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25일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고소인을 지원해온 성폭력 인권운동가 루이스 니콜라스는 “피해 고소인에게 사과 같은 것을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니콜라스는 “고소인이 이 문제로 꽤 괴로워하고 있다”며 강 장관의 사과가 한국 국민이 아닌 고소인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에서 뉴질랜드를 비판하고 강 장관을 비호했다. 윤 의원은 “국제적 관례로서 세계 모든 국가에서 보장하는 ‘공관 불가침’ 협약에 대해 뉴질랜드 정부가 과도한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뉴질랜드 측에 국제 사법공조 절차에 따라 요청을 해올 경우 충분히 응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뉴질랜드 정부는 실제로 요청은 하지 않으면서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는 외교적 선을 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