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거대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특정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반복될 때를 대비해 교역 창구를 넓히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펴야 합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미국과 중국 등 경제 대국 중심으로 설계해온 기존의 통상 구도가 코로나19로 근본적인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사업장 폐쇄 등으로 인한 생산차질 우려를 덜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코로나19는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반복해서 창궐할 것이며 온난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전염병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감염병을 완벽하게 해결하려 하기보다 생활 속에서 안고 살아가야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미중 갈등이 단기에 종식되지 않고 점차 고조될 수밖에 없는 패권경쟁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중국이 안보와 경제뿐 아니라 근본 가치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데 미국 내 초당적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는 만큼 미국 대선 이후에도 미중 갈등은 지속될 것”이라며 “미중 교역이 전체 교역에서 약 36%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경제의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양국 간 갈등이 심화할수록 한국으로서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위치에 놓일 수 있고 선택에 따라 ‘사드 갈등’ 때와 같은 경제적 고통을 감내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특정국에 집중된 높은 교역 의존도는 지금까지 우리가 거대 경제권과 주요 교역상대국을 중심으로 FTA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교역을 늘려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독일 등 유럽연합(EU)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와 연대해 공동 대응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이들 중 상당수 국가가 개발도상국임을 고려해 FTA와 개발협력사업(ODA)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협정을 내놓을 것을 제안했다. FTA 체결로 자국 시장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개도국의 우려를 ODA를 통해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인도 등과 기존에 맺었던 협정을 재개정해 개방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도 했다. 김 원장은 “EU와의 FTA가 잠정발효된 지 10년 차로 접어들었지만 단 한 번도 개정협상을 하지 않았다”며 “제한적으로 허용된 인력이동 요건을 허무는 동시에 EU 내 화물운송 등 서비스 분야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출마를 두고서는 “출마 자체로 국제통상 무대에 우리의 위치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선거전에 돌입하면 회원국에 우리나라가 중견국으로서 국가 간 첨예한 이해관계에 대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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