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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중소기업이 부끄러운 나라는 미래가 없다

김홍길 성장기업부장

변변한 어린이집도 없는 산단 현실에

中企에 대한 편견·부정적 인식 심화

고질적 일자리 미스매칭 해결하려면

산단내 문화인프라 재정지원 나서야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조선시대 직업에 따라 계급을 나누던 기준이다. 이런 사농공상은 수백년간 이어져 오면서 우리나라 근대화의 발목을 잡았다.

요즘에는 ‘사농공상’ 변종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극과 극이다.

최근 중기중앙회가 청년구직자 700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것을 친구가 지지해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12%만 ‘그렇다’고 답했다. 가족은 이보다 약간 높은 22%로 나왔지만 거기서 거기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중소기업에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인식을 강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소기업이 인기가 없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사석에서 “사장을 젊은 사람으로 싹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자신도 오너지만 요즘 새로 들어오는 젊은 직원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임원 모두 젊은 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소기업의 조직문화가 경직돼 있고 ‘올드’하다는 뜻일 게다.

국내 중소기업 대표 중 60세 이상 비중은 23%나 된다. 대부분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 자기 성공에 대한 확신도 남다르다. 젊은 직원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준다며 “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살지만 젊은 직원들은 기겁을 한다. 극히 일부지만 직원을 머슴 부리듯이 하대하거나 막말을 하는 사장들도 있다. 익명게시판과 같은 블라인드 사이트에는 “입사 3개월 만에 원형탈모가 왔다”는 고충이 줄을 잇는다. 대기업은 노조가 잘 돼 있고 여론을 의식하기 때문에 갑질 문화가 사라졌지만 중소기업의 변화는 더디다. 수직적이고 고압적인 조직문화는 젊은 직원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보지 못한 경험이어서 기피심리를 더 키운다. 중소기업 오너나 사장들의 각성이 필요한 이유다.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국내 일자리의 99%를 담당하는 게 중소기업”이라며 비행기를 태우지만 ‘레토릭(수사)’에 그쳤다. 지금까지 쏟아졌던 수많은 정책이 결국에는 중소기업 인식개선에 ‘무용지물’이었다는 게 그 방증이다.

매년 취업시즌만 되면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다며 구인난을 토로하고 젊은 구직자는 갈 곳이 없다며 구직난을 호소하는 ‘일자리 미스매칭’ 기현상 역시 정부 책임의 연장선에 있다. 정책이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에 머물러 있어서다.

직원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오밀조밀 몰려 있는 공단의 인프라는 젊은 구직자들을 유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수년 전부터 산단 구조화 사업을 해오고 있고 현 정부 들어서는 산단 내 혁신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스마트 산단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직원 자녀들이 하루 종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이 더 절실하다. 수년 전 얘기지만 한국산업단지공단 직원이 전국 산단에 그럴싸한 어린이집을 지어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예산을 주무르는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에서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전국 산단이 수백개인데 예산은 누가 댈 것이냐’는 게 이유였다. 정부가 이러는 사이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더 악화됐다.

‘친정집’처럼 편한 어린이집을 전국 산단에 설치하고 최고의 보육교사와 시설을 갖춰 놓으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대접을 달리하면 자긍심이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중고교와 CGV와 같은 대규모 영화관 등의 문화 인프라 시설을 재정 지원하면 젊은 인재들이 몰려 고질적인 일자리 미스매칭도 풀릴 수 있다. 수백년 전의 ‘사농공상’이 현시대에 변종이 돼 중소기업에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바이러스’가 돼 있다는 사실은 미래를 암담하게 만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막아야 하고 변종 ‘사농공상 바이러스’도 꼭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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