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선고와 검찰 수사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국민참여재판·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제도의 명암이 최근 들어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지난 2008년에 첫 선을 보인 국민참여재판은 도입한 지 10년째를 맞이하며 순항 중이다. 이에 반해 수사심의위 제도는 2018년 도입된 지 3년 만에 ‘무용론’까지 등장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앞서 열린 여덟 번의 수사심의위 결정을 수용한 검찰이 유독 검언유착 의혹 사건·삼성그룹 부정승계 의혹 사건에서 연이어 반대되는 결과를 내놓은 탓이다. 검찰이 남긴 ‘나쁜 선례’가 두 제도의 희비를 가른 셈이다.
전문가들은 두 제도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원인으로 운영상 차이를 꼽는다. 국민참여재판·수사심의위는 각각 재판 절차의 정당성·투명성 확보, 검찰권 견제를 위해 생긴 제도다. 똑같이 국민 의견을 반영하고 있으나 참여자들이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범위 등은 차이가 크다. 실제로 검찰수사심의위 운영지침 제13조(의견서 등 제출)에는 검찰·신청인(변호인) 측이 수사심의위원에게 제출하는 의견서는 30쪽(용지 크기 A4, 글자 크기 12포인트 이상, 첨부 서류 포함)이다. 다만 수사심의위원장은 사안에 따라 심의일 이전에 의견서 쪽수를 조정할 수는 있다. 반면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규칙 제40조(배심원 대표)에서는 ‘증거서류 제출 요청’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41조(평의의 방식)에서도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배심원에게 공소장 사본, 재판장 설명서 사본, 증거서류 사본 및 증거물을 제공할 수 있다’도 담고 있다. 수사심의위원들이 한정된 자료로 기소나 수사 계속 여부, 구속영장 청구 등을 한정된 의견서 내에서 판단하는 것과 달리 배심원들은 공소장 등 풍부한 자료를 보고 재판부 판결에 대한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두 제도는 상반된 양측의 주장을 듣는 시간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수사심의위의 경우 검찰·신청인 측이 사건 설명이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시간은 각각 30분이다.(제14조 의견진술 등) 수사심의위원들도 허용된 시간 내 질의가 가능하다. 다만 질의 시간 등은 수사심의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이 증거조사는 물론 공판에 전부 참여, 양측 주장을 들을 수 있다. 또 ‘재판장이 평의 등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 변론 종결일로부터 3일 이내의 범위 내에서 평의·평결 및 양형에 관한 토의를 위한 기일을 따로 지정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실제로 1박 2일 토의 등은 이뤄지지는 않았으나 충분한 논의 시간을 보장하고 있다는 게 법원 측 설명이다.
20년 이상 경력을 지닌 한 변호사는 “양측이 핵심 내용을 담았다고는 하나 단순히 정리된 자료만 가지고는 수사심의위원들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수사심의위원들도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공소장 등 자료 요청이 가능해야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의나 논의 과정에서도 충분한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사심의위 제도가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데 따라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과감히 메스를 대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수사심의위의 이른바 ‘태생의 한계’. 대검 예규가 아닌 법적 근거를 둬야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을 견제한다는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측 관계자는 “확신한 법적 근거에 따라 만들어진 국민참여재판과 달리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셀프 개혁’ 차원에서 대검 예규를 근거로 도입한 터라 토대가 불안정하다”며 “지금처럼 대검 예규에 따라 검찰총장이 임의로 위촉한 위원들이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을 견제한다는 기능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률적 위임에 따라 수사심의위 운영할 수 있도록 한 뒤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수사심의위 결정에 대한 강제성은 물론 사안에 따라 위원 구성의 투명성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수사심의위원들의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지난 6월26일 열린 수사심의위에서 위원장을 맡은 양창수 전 대법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두둔하는 칼럼을 기고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며 뒷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관은 결국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오랜 친구 관계라며 스스로 위원장 직무수행 회피 신청을 냈다.
한 로스쿨 교수는 “삼성 사건은 양 수사심의위원장이 심의 대상자와 친분이 있고 삼성에 우호적인 전문가들이 위원 명단에 올라 있는 등 공정성 담보가 쉽지 않다”며 “이럴 때 위원 배제 및 회피를 확실히 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도 “심의위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만 선정기준도 공개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심의위원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야 하지만 선정과정만큼은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현덕·박준호·손구민·이희조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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