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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십자군 광풍'에 내몰린 한국 기업

서정명 산업부장 vicsjm@sedaily.com

'내가 옳다' 신념에 빠진 십자군 원정

200년 전쟁에 유럽은 암흑 소용돌이

당정청 '대기업은 손 볼 대상' 도그마 빠져

법인세인상에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밀어붙여

기업 야성적충동 일깨워 코로나 극복해야

중세의 십자군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

광기(狂氣)를 머금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1095년 클레르몽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오리엔트 원정이 결정됐고 2년 뒤 교황 우르바누스2세는 십자군 전쟁을 제창했다. 이후 거의 200년간 8차례에 걸쳐 전쟁은 벌어졌고 중세 유럽은 암흑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절대권력을 장악한 교황은 무소불위였다. 인간세계 악(惡)을 해결하려면 신의 위임을 받은 성직자 계급이 앞장서 이슬람세력을 박멸해야 한다는 비뚤어진 신념이 이성과 상식을 압도했다. 교황의 뜻을 받들어 템플기사단, 성 요한 기사단, 병원 기사단 등이 앞다퉈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로마 교황청은 원정 도중에 전선에서 이탈하는 자는 파문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사람들은 창칼에 죽어 나갔고 민생은 파탄났다. ‘내가 정의다’라는 오만과 아집이 빚어낸 중세 흑역사의 한 페이지다.

‘공정경제’라는 미명(美名)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그 동안 대기업은 정부지원과 탈법·위법으로 급성장했으니 이제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도그마가 팽배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경제’ ‘경제민주화’ 기치를 내걸었으니 정부·더불어민주당·청와대가 고래심줄 같은 3각편대를 만들어 대기업을 옥죈다.

“우리가 촛불이다”를 외치며 무오류·무결점을 주장하는 정부는 거칠 것이 없다. 법인세 부담을 가중시키더니 이번에는 상법과 공정거래법까지 바꿔 토끼몰이 하듯 대기업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뿜어내는 한숨과 의견은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이들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감사위원 분리 선임 △3%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담고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정부는 되레 기업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기업들은 쇠스랑 규제에 묶여 과감한 투자결정를 내리지 못하고 해외 투기세력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엉뚱한 데 힘을 쏟아야 할 처지다.





공정경제는 우리 경제와 기업이 직면한 상황을 고려해 속도조절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한국경제 현실을 도외시한 공정경제는 최저임금 과속 인상처럼 한국경제를 역주행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176석을 장악한 거대 여당은 ‘달님’ 친위대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반시장·반기업 법안을 컨베이어벨트 돌리듯 대량생산하고 있다. 경영경험 일천한 의원들의 이념법안에 기업들은 ‘실험실 청개구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여권은 해고자의 기업별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강성 노조 해고자가 노조를 합법적으로 점유하고 경영에 일일이 간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대형마트에 더해 백화점, 복합쇼핑몰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법안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기업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북돋우기는 커녕 규제하는 것이 마치 공정이고 정의라는 자기체면에 빠져 있다.

세계 각국은 기업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 이후 글로벌 패권전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기업지원을 통해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경제철학을 갖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향후 2년간 총 200억유로(약 28조원)의 감세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국가들이 감세와 과감한 기업유턴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다. 정부 재정을 풀어 공무원을 늘리고 일회성 알바 고용에 방점을 찍고 있는 우리와는 천양지차다. 기업이 흥(興)하느냐, 쇠(衰)하느냐는 최고지도자의 철학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이는 국가의 흥쇠와 직결된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3가지 조건으로 역량, 행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질을 꼽았다. 기업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기업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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