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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만필]휴먼 바이러스

서구일 모델로 피부과 원장

매뉴얼은 업무편의 위해 표준화한 것

제대로 안 지키면 사고나 실수 저질러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짜증 나지만

코로나 대응 위해 참고 당분간 지켜야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업무 매뉴얼은 업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것이다. 업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으면 직원별 개인차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나 서비스가 가능하다. 모 치킨 프랜차이즈의 매뉴얼은 30분만 교육받으면 처음 입사한 알바생도 바로 바삭바삭한 치킨을 조리할 수 있다고 한다. 간혹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지금까지 행복을 전해드리는 상담사 ○○○였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등으로 끝나는 클로징 멘트를 듣게 된다. 바쁜 세상에 쓸데없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들 역시 매뉴얼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병원에도 업무 매뉴얼이 있다. 고객이 도착하면 예약과 도착시간, 의사의 상담시간, 치료 시작 시간 등을 담당 직원이 전부 기록한다. 이 직원의 주 임무는 진료와 치료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조율하는 것이지만 고객의 대기시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임무 중 하나다. 물론 병원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대로 정확히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고객들이 내원시간을 지키지 않아 갑자기 몰릴 수도 있고 의사의 상담이나 치료 시간이 예기치 않게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수로 장시간 대기하는 고객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고객의 대기시간이 가능한 길어지지 않도록 전담 직원을 배치해 체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객 대기 매뉴얼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20여년 전 개원 초기 고객이 1시간 이상 대기실에 방치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고객 대기 매뉴얼이 없어 점심시간에 업무 교대를 하는 직원들끼리 해당 고객 인수인계를 놓치고만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쳐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개똥철학이 발동해 고객의 이름과 예약 및 도착시간 등을 전부 기록하는 고객 대기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러나 잘 돌아가는 듯하다가도 몇 년에 한 번꼴로 고객이 1시간 이상 방치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개 새 담당 직원이 매뉴얼대로 하면 귀찮으니 본인 편한 대로 도착시간을 쓰지 않아 고객을 방치하는 일이 또 반복됐던 것이다.



간호사들에게도 지켜야 할 업무 매뉴얼이 있다. 간호사가 치료보조를 할 때 필러는 소독된 핀셋으로 집어 옮겨야 한다. 매뉴얼에는 핀셋으로 집은 필러를 혹시 떨어뜨릴 경우에 대비해 소독된 받침대를 밑에 받치고 옮기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새 간호사가 들어오면 필러를 빨리 옮겨야겠다는 심정에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핀셋만으로 집어서 옮기다가 꼭 한 번씩은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한다. 한 개에 10만원씩 하는 필러를 못쓰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신규 의사가 들어오면 새로 접하는 기기나 시술법을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자신 편한 방법으로 바꿔 하다가 한 번씩 사고를 치고는 한다. 기본에 충실한 다음에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한두번 하다 보면 별것 아닌 것 같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귀찮고 불편한 매뉴얼이 만들어진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고를 방지하고 최소한의 업무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병원 매뉴얼에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안은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본인이 귀찮아 매뉴얼을 안 지키는 것은 우리 병원의 시스템을 파괴시키는 ‘휴먼 바이러스’나 마찬가지라고 힐난한다. 공공의 규범과 법도 불편하지만 참고 지켜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친지들 모임은 취소되고 헬스클럽·PC방·노래방·클럽 등 다중이용시설은 운영을 중단하고 식당도 오후9시면 문을 닫아야 한다. 심지어 한강공원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등 불편함을 넘어 ‘코로나 블루’에 짜증까지 폭발할 지경이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니 어쩌겠는가. 공동의 ‘휴먼 바이러스’가 되지 않으려면 당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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