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중국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낸 관세분쟁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TO 탈퇴를 위협하고 있는 데다 현재 상소기구조차 운영되지 않고 있어 의미 없는 승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WTO에서 1심 역할을 하는 패널은 이날 미국이 약 2,340억달러(약 276조1,0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부과한 관세는 무역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조치가 중국 제품에만 적용됐기 때문에 국제무역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산 제품이 지식재산권 도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WTO의 해석이다. WTO는 “양국에 상호가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얻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의 부당한 정부 보조금 지급과 지식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자국의 무역법 제301조에 따라 지난 2018년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 조치를 취했다. 무역법 제301조는 외국이 미국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 무역 관행을 부과할 때 대통령에게 관세 및 기타 수입 제한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가 WTO 회원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며 보복 조치 전 WTO 판단을 받도록 한 분쟁 조정 규정을 어겼다며 WTO에 제소했다. 이에 WTO는 지난해 1월 패널을 설치했고 1년 넘게 심리해왔다. AP통신은 “이번 판결이 트럼프 정부가 다른 나라 상품에 부과한 일련의 관세에 대한 WTO의 첫 판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의 승리는 허울뿐인 승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통신은 “WTO 패널이 중국에 서류상 승리를 안겨줬지만 미국이 이미 상소 절차를 없애 WTO를 절름발이로 만든 만큼 판결의 의미가 작다”고 평가했다.
WTO의 분쟁 해결 절차는 2심제로 구성되는데 1심에 해당하는 패널이 판결을 내려도 당사국 중 한 곳이 불복, 상소할 경우 상소기구가 이를 처리해야 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상소위원 임명을 보이콧하면서 정족수 부족으로 지난해 12월부터 개점휴업 상태다. 최종판결이 불가능한 상태인 셈이다. 특히 중국 역시 미국의 관세부과에 보복조치를 단행해 이 역시 규정 위반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은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WTO를 활용해 미국 노동자와 기업, 농민, 목장주 등을 이용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가 역사적인 미중 간 1단계 무역합의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미국 기술 도둑질을 막기 위해 중국의 새롭고 집행 가능한 약속이 포함된 미중 합의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판결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