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 관계였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평화협정을 맺고 국교를 수립했다. 지난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협정식에서 증인 자격으로 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한껏 뽐냈다. 한때 ‘트럼프 협정’으로 불렀으면 좋겠다는 트럼프의 농담 섞인 발언도 있었지만, 결국 ‘아브라함 평화협정’으로 명명됐다. 당사국들 모두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뿌리가 되는 조상 아브라함의 이름을 따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세 종교의 공동 조상 아브라함은 이날 후손들에게 평화협정을 선사했지만 불화의 씨앗을 심은 것도 그였다. 유대교 경전인 구약성경과 이슬람교 경전인 쿠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기원전 1,800년대에서 1,600년대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명령에 순종한 보상으로 받은 이름이다. 그가 신앙의 조상으로 추앙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구약성서와 쿠란의 설명이 엇갈린다. 성경에는 그가 100세에 본처 사라에게서 낳은 둘째 아들 이삭을 바쳤다고 쓰여 있다. 반면 쿠란에는 86세에 여종 출신 하갈 사이에서 얻은 장남 이스마엘을 바쳤다고 적혀 있다. 신앙의 출발에서부터 유대·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인식이 판이한 탓에 종교 간에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반복된 게 아닌가 싶다.
구약성서를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상식적 기준에서 그리 정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죽음이 두려워 자신의 아내 사라를 탐하는 권력자에게 아내를 이복동생이라고 말해 넘겨주는 잘못까지 저지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할 수 없고 나약한 인간을 향한 신의 섭리라는 게 종교적 해석이다. ‘아브라함 평화협정’을 이뤄낸 공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내친김에 북한과도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깜짝 북미 대화설’도 끊이지 않는다.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에서 드러난 온갖 구설에도 흔들림 없는 트럼프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