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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이 소송 걸면 영업비밀 내주고 압수수색 받을 판"

[韓 '반도체 소부장' 특허소송 늪 빠지나]

韓 반도체 장비업체 6곳 특허 합쳐도 日기업 1곳의 1/3 그쳐

소송서 패할 땐 생산 불가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위협

산업 특성 고려 조사 기간·범위 제한 등 보완책 동반돼야

“외국 기업이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 영업비밀이라도 내줘야 합니다. 심지어 외국 기업 관계자가 증거수집 명목으로 마치 수사기관처럼 사무실과 공장을 샅샅이 ‘압수수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국내의 한 반도체 부품회사 관계자는 정부가 발의한 ‘한국형 증거수집제도(K-디스커버리)’가 도입돼 특허법이 강화되면 이 같은 상황이 수시로 벌어질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국 기업이 ‘K-디스커버리’를 악용해 소송을 남발해도 특허권이 약한 국내 기업 상당수가 꼼짝 못하고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해 기업의 사법 리스크를 크게 높이게 될 집단소송제 역시 K-디스커버리와 유사한 소송 전 증거개시 제도를 포함하고 있어 특허법 강화가 기업들의 소송 대란 ‘예고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방문해 공장 시찰실에서 불화수소 세척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기업 특허 출원 한국의 20배

中企 ‘특허침해’ 확인 전문인력도 부족

기술격차 따라 잡기 더 힘들어질 듯



◇외국 기업 평균 특허 출원 수, 한국의 20배=국내 산업의 중추인 반도체업계는 미국·일본 등 해외 소재·부품업체들의 국내 출원 특허건수가 국내 업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에 우려가 크다. 세계적 반도체 장비업체인 일본 도쿄일렉트론은 한국에 현재 총 1만4,713건의 특허를 출원했는데 이는 국내 장비업체 중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A사(2,526건)보다 6배가량 많은 것이다.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6곳의 특허를 모두 더해도 5,461건으로 도쿄일렉트론 한 곳의 3분의1 수준이다.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와 램리서치 역시 국내 특허건수가 각각 7,907건, 3,123건에 달한다. 반도체 소재·부품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업체당 국내 평균 특허 출원 건수를 비교하면 해외 기업은 578건인 데 비해 국내 업체는 29건에 불과해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국내외 반도체 업계 간 특허권 격차는 K-디스커버리가 도입되면 그대로 소송 남발을 부를 것으로 전망된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출발점 자체가 미국이나 일본·독일 등 특허 강국인 데 기인한다. 반도체 장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 기업이 중복되는 기술조차 개발 시기 등을 앞세워 특허 침해라고 대거 주장하고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소업체들이 대부분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기업들은 생산 과정에서 타사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전문 인력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전자정보통신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형 디스커버리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방지하고 중국의 특허 침해를 사전에 막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국내 산업 비중이 가장 큰 반도체업계에는 득보다 실이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日 대응한 소부장 2.0 전략에도 역행=특허법이 강화되면 국내 반도체업계의 소재·부품업체들은 가뜩이나 큰 특허 격차를 따라잡기가 더 어렵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본이 지난해 전격 개시한 수출규제에 대응해 정부는 소부장 집중 육성 정책을 마련하고 올해는 반도체와 미래차·바이오 등 첨단 분야까지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 지난해 대(對)일 무역적자 가운데 95%를 소부장 분야가 차지하고 특히 첨단 산업은 일본 의존도가 높다.

정부가 불화폴리이미드·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 등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의 국산화에 나섰지만 수입 의존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전체 수입액 대비 일본에서 들여오는 불화폴리이미드 비중은 지난해 말 73.2%까지 낮아졌다가 올해 7월 현재 76.9%로 다시 증가했다. 불화수소는 7%에서 11.5%로, 포토레지스트는 84.9%에서 88%로 같은 기간에 일본 수입 비중이 역시 상승했다.

반도체업계의 ‘극일’이 이처럼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 리스크까지 덮친다면 국내 업계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산업연구팀 연구위원은 “국내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고사양 메모리 생산이 주력이기 때문에 최첨단 수입장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국산화율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특허권 보호가 시급한 다른 산업 분야도 있는 만큼 ‘K-디스커버리’ 도입 자체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면서 “다만 업계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만큼 의견을 수렴하고 필요하면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당사자 간 증거를 주고받는 미국식은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전문가 조사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한국형 디스커버리가 특허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측면은 있지만 산업마다 각각 다른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며 “특허 침해 조사 기간이나 범위를 제한하는 등 보완책 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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