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세부 내용이 공개됐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주로 중증 환자들에게 권장하는 약물을 투여받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나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HO "덱사메타손, 중환자들만 권장"
4일(현지시간) 미 대통령 의료진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일종인 염증 치료제 ‘덱사메타손’을 복용했다고 밝힌 것이다.
덱사메타손은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시험 결과 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률을 상당히 낮추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받은 치료제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의 경우 35%, 트럼프 대통령처럼 산소보충 치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20% 각각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가격이 싸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이지만 단점도 있다. 인체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인 오녜마 오그부아구 예일대 부교수는 USA투데이에 “스테로이드의 단점은 선택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바이러스와 싸우는 인체의 능력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양날의 칼과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권위 있는 보건 전문 기관에서는 경증 환자의 덱사메타손 복용을 권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태이거나 심각한” 코로나19 환자에게만 이 치료제를 투여해야 한다며 “우리는 심각하지 않은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해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 국립보건원(NIH) 가이드라인도 산소 보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도의 환자에게는 덱사메타손 사용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 치료제를 쓴 것은 그만큼 상태가 가볍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폴리티코 등 미 언론매체들이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폐렴 증상을 보였을 것이라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브리검 여성병원의 내과 전문의 아브라 카란은 폴리티코에 “덱사메타손 투여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러스로 인해 폐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CBS 의학전문기자인 데이비드 아구스는 “덱사메타손은 심각한 폐렴을 치료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그런 증상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라며 이 치료제가 조증과 같은 뇌 관련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램데시비르도 경증 환자엔 권장 안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월터 리드 군병원에 입원한 이후 투여받기 시작한 렘데시비르도 사실 경증 코로나19 환자에게는 권하지 않는치료제라고 CBS가 지적했다. NIH는 경증 또는 중간 정도의 증상을 보이는 코로나19 환자에게 렘데시비르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할 만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산소 보충을 해야 하는 입원 환자에 대한 사용을 우선시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중간 정도의 증상을 가진 환자들에 대한 렘데시비르 임상시험은 현재 진행 중이라고 NIH는 전했다. 미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한 렘데시비르는 지난 5월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사용을 승인받았다. 이후 중증 환자 치료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덱사메타손과 달리 사망률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코로나19 회복 기간을 앞당겨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트럼프 대통령은 확진 직후 미 생명공학회사 리제네론이 개발 중인 단일클론항체 약물을 투여받았다고 의료진이 밝힌 바 있다. 리제네론은 초기 질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약물을 개발 중이다.
트럼프 상태 악화할 가능성은?
의료진 브리핑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혈중 산소 포화도가 일시적으로 94% 밑으로 떨어졌으나, 약 2ℓ의 산소 보충 공급을 받은 후 정상 범위인 95% 이상을 회복했다. 이튿날 다시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덱사메타손을 복용한 뒤로는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금명간 퇴원할 전망이지만, 이후 상태를 100%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터프츠대 병원의 감염병과장인 헬렌 바우처는 폴리티코에 “(코로나19 감염 후) 2주차 시작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단계”라며 통상 7∼10일 후 상태가 악화한다고 전했다. 뉴욕의대 봅 레히타 교수는 CBS에 “동전 뒤집기처럼 급격하게 달라질 수 있다. 괜찮다가도 불과 3시간 뒤에 몹시 악화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염려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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