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수량적 한도를 시행령에 위임하는 내용의 한국형 재정준칙에 대해 “대다수 국민의견이 시행령보다 법이 타당할 것 같다고 하면 (법으로 제정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수치를 담게 돼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그때 그때 바뀔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인데 야당은 법률에 넣는 방안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홍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을 방문해 “법으로 규정하면 조정 필요성이 있을 때 탄력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검토의견을 그대로 발표한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그는 “시행령도 개정하려면 국회와 많은 협의가 전제돼야 하고, 국무회의를 거쳐야 해 쉽게 하기 힘들다”면서도 “반드시 시행령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이 문제는 국회와 잘 상의해서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헌법에 규정하는 등 대부분의 해외 국가들은 법률 또는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당정의 한 관계자는 “법률이냐 시행령이냐는 당정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회에서 3년, 5년 마다 바꾸긴 어려워 여당 입장에서는 시행령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에 대해 여당은 확장재정이 필요한 시점에 재정운용의 경직성이 높아진다는 불만을 나타내고 있으며, 야당은 법률을 통해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재정준칙에는 오는 2025회계연도부터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되, 국가채무비율을 60%로 나눈 수치와 통합재정수지를 -3%로 나눈 수치를 곱한 값이 1.0 이하가 되어야 한다는 한도 계산식이 적용됐다. 이로 인해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느슨한 데다 곳곳에 면제 또는 예외조항이 많아 현 정권의 확장재정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홍 부총리는 당일 갑작스러운 예고 후 브리핑룸을 찾았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각각의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올해 불가피하게 네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할 수 밖에 없었고, 국가채무비율이 4%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이 한해에 그치지 않고 내후년 까지도 파급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올해 4차 추경 기준 GDP대비 4.4%인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곧장 회복되긴 어려운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부터 재정준칙이 적용된다는 지적에 대해 홍 부총리는 “내년부터 적용하려고 국가채무비율을 70%, 통합재정수지를 -5%로 제시할 수 없다”며 “앞으로 통합재정수지 마이너스를 줄여 나가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재정준칙을 만든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가채무와 재정수지를 AND로 함께 보면 너무 엄격하고 둘 중 하나인 OR로 하면 너무 느슨해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곱셈 산식을 마련한 것”이라며 “적어도 5~7년 정도는 이 준칙이 적합하고 그 이후 통합재정수지가 균형으로 가면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홍 부총리는 “예외조건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국회와 협의해 일정조건을 충족하도록 엄격하게 만들 것”이라며 “다만 고정불변한 준칙이 될 수는 없고 5년마다 검토할 때 조금 더 허용하거나 강화하는 범위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황정원·하정연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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