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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뿌리깊은 美 인종차별...남유럽 출신도 '검둥이'로 불렸다

■누가 백인인가?-진구섭 지음, 푸른역사 펴냄

美 초기 이민자, 富·자유 독점 위해

종교·과학·역사 동원해 '인종' 발명

17세기초 흑백개념 없이 일했지만

노동자 반란후 분열시키려 계층화

백인우월주의 재부상으로 불거진

美 인종 감별과 사회불평등 파헤쳐

지난 5월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이 확산 되던 가운데 인종 차별과 노예제도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부각돼 비판받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




17세기 초 대서양을 건너 가까스로 북미 대륙에 당도한 영국 이민자들에게 담배는 구원의 식물이었다. 굶어 죽기 직전 담배 씨앗을 어렵게 구해 농사를 지었고, 수확물을 본국에 팔았다. 반응이 좋아 담배 농사는 번성했고, 이내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지자 본국에서 계약 하인들을 데리고 왔다. 상당수가 하층민이거나 죄수였다. 그래도 노동력은 부족했다. 그때 선원들이 ‘검둥이’를 데리고 와 필요 물품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담배 농장에선 영국에서 온 계약 하인과 ‘검둥이’가 함께 일하고 어울려 지냈다.

당시 이들에 대한 농장주의 처우는 똑같았다. 이들은 같은 숙소에서 지냈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유민이 됐다. 영국에서 온 하층민도 ‘검둥이’도 노력하면 계약 하인을 거느리는 번듯한 농장주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북미 대륙에 노예는 없었다. 미국은 ‘자유의 땅’이었다. 그랬던 미국에 어떻게 ‘흑인 노예’란 개념이 등장하게 된 걸까. 미국은 어쩌다가 오늘날 인종 차별 문제가 가장 복잡하고 시끄러운 나라가 됐을까.



진구섭 미 맥퍼슨대 교수가 30여 년 동안 미국 인종 관계와 사회 불평등, 이민의 역사를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엮어 펴냈다. 2020년에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외침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미국의 인종 감별 잔혹사를 파헤쳤다.

진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인종화(racialize) 된 사회다. 태어날 때부터, 또는 미국 영토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사람이 인종화된다. 혈통이나 피부색, 머릿결, 눈동자 색 등 외모의 특징에 따라 특정 인종으로 분류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인종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이런 불쾌함은 시작에 불과하다. 각 인종 범주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정 관념이 들러 붙는다. 흑인은 게으르고, 아시아인은 순응적이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 개개인을 집어 넣는다. 각 틀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뿌리내린 서열 번호도 매겨져 있다. 이를 토대로 어떤 이는 특권을 누리고, 어떤 이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많은 이들이 1960년대 민권 운동 이후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진 교수는 인종차별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문구가 박힌 마스크를 쓴 미국 유권자./AP연합뉴스




인종 분류는 과학에 기반하지 않는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 기록에서도 인종 분류는 찾을 수 없다. 인종이란 개념을 만들고 분류를 시도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근대의 발명품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선 왜 이런 몹쓸 발명품이 만들어진 걸까. 1607년 영국에서 건너온 존 롤프가 인디언 포카혼타스와 결혼을 하고 담배 농장주가 됐을 때만 해도 흑인과 백인 개념은 없었다. 농장주와 농장 하인이 있었을 뿐이다. 백인 하인과 흑인 하인이 함께 일하고 먹고 잤으며, 함께 도망치다가 벌을 받기도 했다. 이들이 계층화한 건 17세기 후반 노동자 반란 이후다. 흑백 노동자가 단합해 농장주에게 대들자 농장주들은 이들을 분리하기 위해 유럽계 계약 하인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신분이 올라간 유럽계 백인 하인 출신들은 스스로 호칭을 ‘크리스천’으로 바꿨다. 이후 ‘자유인’이나 ‘영국인’으로 부르다가 ‘백인’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냈다. 노동자 계급의 연합을 막기 위해 노동자 집단 분열 장치로서 ‘인종’이 고안된 것이다.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아버지는 자메이카, 어머니는 인도 혈통이다. 그렇다면 해리스는 어느 인종에 속하는걸까./AFP연합뉴스


부와 자유 독점을 위해 ‘만들어낸’ 장치인 만큼 인종이란 개념은 당연히 모호했다. 외모 특징이 구분 기준이라 했지만, 사람의 생김새는 다 달랐다. 남유럽계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오고,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이민자가 유입됐다. 먼저 온 유럽계 이민자, 앵글로 색슨족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출신들은 이들과도 선을 그었다. 이들은 왜소하고 피부색이 어두운 편인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인들도 흑인으로 여겼다. 1891년 뉴올리언스 군중들은 경찰서장 살해에 가담한 이탈리아인들을 스스로 심판하면서 ‘백인 검둥이(whitenigger)’ ‘검둥이 백인(dago)’라고 불렀다. 뉴욕타임스조차 사설에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를 ‘교활하고 비겁한 시칠리아인’ 등으로 거침없이 폄훼 했다. 그리스 이민자는 ‘기름때(greaser)’로 불렸다. 유대인은 ‘검은 동양인(blackoriental)’ ‘미흡한 백인(not quite white)’ 등으로 비하했다. 이들에 비해 뒤늦게 이민 행렬에 합류한 폴란드 등 동유럽계,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인종 분류와 혐오가 서슴없이 자행됐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성경을 오독해 인종 분류에 기반한 차별을 정당화했고, ‘과학적’이라고 우기는 학자들의 부실한 연구가 보태졌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10년마다 인구 조사를 하면서 여전히 허술한 인종 분류를 고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과 함께 ‘백인우월주의’가 재부상했고 인종 문제가 암 덩어리처럼 재발했다. 진 교수는 현대 유전학자들의 말을 빌어 “피부색에 따라 인종을 구분하는 구태는 인종 오류”라고 강조하며, 인종 문제를 통해 다른 차별의 요소들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젠더나 계층, 학벌, 출신 지역, 종교, 국적, 성적 지향 등에 있어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배제와 혐오가 작동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이렇게 배제를 통해 타자화하고, 낙인 찍고, 서열화하는 문제는 미국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한다. 1만8,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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