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의 말 한 마디가 미중 갈등이라는 도화선에 옮겨 붙으며 순식간에 한중미 삼국의 외교 문제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BTS가 한미동맹을 강조하자, 중국 관영 언론이 앞장서 들끓는 자국 네티즌들의 여론을 전달한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도 BTS 관련 광고를 내리는 등 급한 불을 끄고 나섰습니다. 정·재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제2의 사드(THAAD) 사태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올해가 한국전쟁 70주년이라 특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 및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BTS의 리더인 RM이 지난 12일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밴플리트 상을 시상하며 한 말입니다. 한국 국민으로선 당연하게 느낄 발언이지만, 중국은 달랐습니다. ‘중국을 모욕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애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 네티즌들이 보이콧(불매운동)까지 벌이며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문제는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는 점입니다. 환구시보는 화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중국 누리꾼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환구시보는 “국가 존엄을 건드리면 용서를 못 한다”, “BTS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 채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중국을 모욕하고 있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관영매체가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중국의 특성을 감안하면 정부가 대놓고 반(反)BTS 여론을 확대한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중국 정부의 ‘BTS 때리기’가 미중 갈등 속 한국을 향해 날린 ‘견제구’라고 분석했습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중국 정부가 문화 부문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어느 분야에서도 한미동맹을 강조한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동원하는 반(反)중국 블록에 한국이 가담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겁니다.
미국은 최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인도-태평양전략 등 경제·안보 다방면으로 한국을 반중국 연대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클린 네트워크’ 정책은 한국이 미중 갈등 속에 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9월 통신장비부터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 서비스, 해저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기술(IT) 서비스 분야에서 중국 공산당과 기업의 개입을 끊어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전통적인 동맹국인 한국을 여기에 포함하려 노력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지난 14일 한미 양국은 고위급 경제협의회를 열어 클린 네트워크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이어갔고, 우리 측은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업체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 법령상 민간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 속내는 ‘중국의 IT기업 견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밝히며 화웨이 등 통신업체를 대폭 지원하자 그 싹을 잘라내기 위해 봉쇄전략을 가동했다는 것입니다.
BTS 사례가 외교·안보 이슈에서 경제 분야로 넘어가면서 재계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입니다. 중국 내에서 BTS에 분노하는 여론이 조성되자 한국 기업들은 광고를 거둬들이는 등 신속한 대처에 나섰습니다. BTS를 모델로 기용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휠라 등 한국 기업들은 웨이보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BTS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한령(限韓令, 중국 내 한류 금지령)의 여파가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우려는 더욱 큽니다. 과거 한한령 역시 한중미 삼국 간의 안보이슈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경제 분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남 교수는 “경제, 안보 뿐만 아니라 문화 분야로도 중국의 압박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환구시보는 해당 보도가 논란이 되자 다음날인 13일 해당 기사를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이틀 뒤인 15일 다시 “한국 언론은 중국 누리꾼의 반응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며 책임을 한국 언론에 떠넘겼습니다. 반면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반발을 겨냥해 14일 “긍정적인 한미 관계를 지지하는 데 노력해줘서 감사하다(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BTS의 한 마디가 미중 양국 간의 자존심 문제로 비화하며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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