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백상논단] 개혁정책의 성공조건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공정경제 3법' 취지엔 공감하지만

3%룰·다중대표소송요건 완화 등

강행땐 부작용 우려 커 재계 반발

국민적 합의 도출하려는 노력 없어

의료파업·전세난 전철 밟을 수도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명분에 더해, 전문적 시각에서 정책 내용의 적합성을 인정받아야 함은 물론 이해당사자의 합의 도출에 필요한 정치·사회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지난 50년간 정책전문가로 활동한 필자는 위의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만 충족되지 않아도 개혁정책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최근 사례가 이를 잘 입증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의료계의 극렬한 반대가 예상되는 ‘의료개혁’을 추진하려다 혼란만 일으키고 중단했다. 부동산 정책 역시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대차보호법을 국회에서 다수결로 밀어붙인 결과 전대미문의 전세난을 야기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역시 같은 길을 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공정경제 3법을 추진하는 명분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다. 이는 모두가 수긍하는 명분임에 틀림없으나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예를 들어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은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한다는 명분이 있으나 소유지분에 따라 경영진을 선출하는 주식회사의 근간을 무시함은 물론 투기자본과 같은 적대적 외부세력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계와 전문가들도 반대의견이 많다. 다중대표소송 요건을 완화하는 문제도 기업이 행동주의펀드들의 소송대상이 돼 안정적인 기업경영 환경을 저해한다는 차원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 역시 검찰의 개입 또는 시민단체들의 무분별한 고발로 기업경영에 불필요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공정경제 3법을 정부와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자 경총·상의는 물론 중견기업연합회와 주요 업종단체를 포함한 재계 전체가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야당 역시 투명한 기업경영이라는 목표에는 동의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더불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법 개정도 검토하자는 입장을 취한다. 야당이 주장하는 노동개혁도 당위성 차원에서는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별로 없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한국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약화하는 핵심원인으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비록 개혁정책의 내용이 타당하더라도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지난 1997년 초 김영삼 정부는 정리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려 했다. 필자를 포함한 상당수 여당 의원들이 내용은 적절하나 정권 말기에 노동계가 적극 반대하는 입법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당시 청와대는 강행을 고집했고 결국 노동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됐다. 그러자 연일 노조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대선을 앞둔 정부와 여당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해 말 외환위기가 발생해 정리해고에 대한 여론이 반전되면서 진보정권인 김대중 정부에 의해 노사정 합의로 노동법 개정이 이뤄졌다. 개혁조치가 성공하려면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수 요건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를 조기에 수습하고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함은 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는 정부와 기업 차원의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시기에 재계 전체가 강력히 반대하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은 정책을 정부와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코로나19를 상대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모범국가로 꼽힌다. 우리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노력에 더해 기업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부와 여당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