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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째 준비한 정책 뒤집히기 일쑤...책임은 '늘공'에 덤터기

[흔들리는 官街]

주식양도세 기본 공제액 등 청와대 한마디에 수정

'월성1호' 감사선 실무진만 징계 대상 올라 부글부글

'책임행정' 힘 실어주고 각 부처 재량권도 넓혀줘야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전경. 가운데로 S자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정부세종청사가 보인다. /서울경제DB




# 국회 호출에 세종과 여의도를 쉼 없이 오가며 지친 기획재정부 세제실 공무원들에게 몇 달 사이에 새로운 고충이 생겼다. 부동산세제 개편과 주식 양도소득세 관련 대주주 기준 강화 방안 등이 이슈가 되면서 이른 아침부터 민원인들의 항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폭주해 출근하기가 겁날 정도다. 올해 네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안 작성으로 파김치가 된 예산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선정과정에서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제를 담당하는 실무진 연락처가 부동산이나 주식 관련 카페에 공유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민원인의 항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며 “관련 정책의 타당성을 조곤조곤 설명해도 욕설을 퍼붓고 끊는 전화도 많다”고 호소했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23일 관련 부처 등에 따르면 세종시 관가는 최근 ‘정무적 판단까지 고려한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어내라’는 정치권의 고차방정식 요구와 국민들의 원성 사이에서 지칠 대로 지쳤다. 관가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이리저리 치이는 현실의 장벽 때문이다.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예고하거나 며칠간 밤을 새워가며 다듬은 주요 정책이 청와대의 한마디에 뒤집히거나 정치권 압박에 수정되는 경우가 잦아지며 힘을 빠지게 한다. 지난 7월 발표한 금융세제 개편 방향의 경우 애초 주식 양도소득세 기본공제액을 2,000만원으로 설정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밝힌 직후 공제액을 5,000만원으로 상향했다. 기재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또한 가족 간 편법증여를 우려해 “가족합산 3억원으로 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달 개인별 3억원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섰다. 지난달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 선정과정에서는 전 국민 대상 통신비 2만원 지원 방침을 두고 ‘재정 포퓰리즘’ 논란이 일자 35~64세를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며 기재부는 또다시 집중 비난을 받았다.

청와대가 국민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일부 관료들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소속조직 업무 관련 내용이 올라올 경우 마음을 졸인다. 정부 부처 과장급 관계자는 “기재부만 하더라도 부동산세제, 주식 양도소득세제 등과 관련해 ‘홍남기 부총리를 해임해달라’ 같은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데다 관련 내용이 바로 온라인 등에서 기사화되며 보이지 않는 압박을 계속 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청와대 게시판 안건이 국민동의 20만건을 넘어설 경우 청와대와 협의해 원고지 20장 분량의 답변서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중앙부처 공무원은 답변서를 두고 ‘정책 반성문’이라는 말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최근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관련 감사’ 결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징계를 요구받은 것에 대해 “공무원이 또 뒤집어써야 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감사 직전 주요 파일 444개를 삭제한 공무원을 비난하지만 결국 장관이 지시한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며 ‘적극행정’이라는 반박도 전혀 수용되지 않는 모습이라 답답하다”고 밝혔다.

만만한 게 공무원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는 4월 재난지원금 100만원(4인 이상 가족 기준)을 각 가정에 일괄 지급했지만 “공무원들은 지원금을 기부하는 게 어떠하냐”는 정치권의 압박에 일부 부처를 중심으로 지원금 기부 행렬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7월 다주택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일부 주택을 매각할 것을 권고하자 관료들 사이에서는 “사유재산까지 간섭하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같은 정치 주도 행정이 결국 소극행정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최근 감사연구원에 제출한 연구보고서는 “정치가 (행정을) 주도하는 현실에서 아무리 적극행정을 강조하고 제도를 개선해도 ‘다음 정부에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적극행정을 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화 시대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에 대한 합의 등이 중시돼 입법부 우위나 정치 주도 현상이 나타났다”며 “정치인들은 더욱 치열해진 선거과정에서 남발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관료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전직 관료 등은 청와대가 중심을 잡고 공무원들이 ‘책임행정’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한편 실무에서는 각 부처의 재량권을 넓혀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부처 장관급 출신의 한 전직 관료는 “노무현 대통령 때만 해도 책임행정을 장려하기 위해 청와대가 각 부처 일을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며 “부처에 권한을 줘야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책 집행이 가능한데 지금과 같이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면 청와대 등 윗선 눈치만 보고 독자적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종=양철민·김우보기자, 윤경환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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