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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의사가 개발한 기관총 '개틀링건'

1862년, 한국형 CIWS체계 근간

개틀링건 도면/위키미디어




‘나의 발명으로 전사하는 병사가 줄어들 것이다.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쓸모없는 줄 알게 될 테니….’ 미국인 발명가 리처드 개틀링(44) 박사가 남긴 어록의 일부다. 도대체 어떤 발명이길래 이토록 장담했을까. 답은 기관총. 회전식 손잡이를 돌려 7개의 총열에서 분당 400발을 쏠 수 있는 기관총을 발명하며 그는 평화로운 미래를 꿈꿨다. 자신이 발명한 기관총의 위력이 뛰어나 전사자가 많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전쟁을 싫어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개틀링의 발명이 가져온 결과는 소망과는 정반대다. 성능이 뛰어난 무기를 갖게 된 사람들은 점점 더 승리를 확신하고 더욱 많은 전쟁을 벌여 더 많은 인명이 죽어나갔다. 1862년 11월4일 ‘연속발사가 가능한 총’에 대한 특허가 인정된 이래 기관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에서는 독일군 기관총 2정에 막힌 미군 1개 중대가 순식간에 전멸한 사례도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전공. 의과대학을 32세에 졸업했으나 평생 단 한 번도 진료하지 않는 대신 발명에 땀을 쏟았다. 스팀청소기와 변기·자전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허를 낸 그는 1891년 미국발명협회 초대 회장에 피선될 만큼 발명가로 이름을 날리다 1918년 85세로 생을 마쳤다. 개틀링 박사보다 오래 남은 것은 기관총. 정당 1,300달러(요즘 가치 24만달러·비숙련공 임금상승률 기준)라는 고가에도 내전(남북전쟁) 중인 북군에 납품되기 시작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치르는 서구 열강은 물론 대한제국까지 개틀링건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다 가볍고 값싼 맥심 기관총이 등장하며 무게 66㎏에 이르는 개틀링건은 20세기 초반 사라졌으나 1960년대 초반 제트 시대 개막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속도가 빠른 제트전투기를 요격하기 위해 발사 속도가 빠른 기관총을 찾다 개틀링건으로 눈을 돌렸다. 20㎜ 발칸포에 이어 12.7㎜와 30㎜ 파생형도 선보였다. 아직도 개틀링건은 지상과 해상·공중에서 기본화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개틀링건과 관련이 깊다. 육군과 해군은 수백 정의 발칸포를 운용 중이다. 군이 3,500억원을 들여 오는 2030년까지 개발하려는 해군함정용 ‘근접방어무기체계(CIWS)Ⅱ’의 탑재무기 후보로 30㎜ 개틀링포 외에는 대안이 마땅찮다. 이미 30㎜급 골키퍼 시스템(네덜란드)의 최대 운용국가인 한국이 차기 CIWS 개발에 성공할 경우 국내 수요 충족은 물론 해외시장도 넘볼 수 있다. 사업의 성공을 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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