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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쏙야쏙]김종인이 쏘아올린 '40대기수론'..與 박용진·박주민이'꿈틀'

■송종호의 여쏙야쏙

일찌감치 불지핀 김종인의 이유있는 '40대기수론'

뜻밖에 여권에서 반응..박용진·박주민 바쁜 움직임

박용진, '이승만·박정희 업적' 언급해 비난 쇄도

박주민, 상의없었던'당대표'출마..당내 불편한 기류

'DJ·YS 기수론 넘어 대세 형성 배경부터 찾아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국회 소통관에서 상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또’ 강성 여권 지지자들에게 돌팔매를 맞고 있습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언급했다가 사단이 났는데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변화 속도가 김문수 전 경기지사보다 빠르다”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진영대결이 뜨거운 정치권에서 현 여권의 반대편에 있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한 게 곱게 보이지 않았겠지만 박 의원 역시 비판 받을 게 분명한 상황을 알면서 메시지를 내놓은 겁니다. 박 의원은 이미 알려진 것과 같이 차기 대선을 “깊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욕’먹을 게 뻔한 메시지와 행보를 보이는 건 그만큼 대권 주자로서 몸을 만들겠다는 셈법일 겁니다.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도 강성 친문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와중에 박 의원이 ‘독자노선’을 걷는 다니 그 성공 여부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주민 의원 행보도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8월 당내 유력 정치인인 이낙연 대표와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며 당 안팎에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는데 이번에는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저울질 하는 모습입니다.

90년생까지 의회진출..'7080'세대 의원7%→18.3%증가
71년생인 박 의원은 올해 만49살로 마지막 4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박주민 의원도 73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인데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그늘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던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민주당에는 70년생 민병덕·이원택·허영 의원을 시작으로 71년생 강병원·박용진·양이원영·임오경·전재수·천준호 의원이 있고, 이동주(72년), 강훈식·이정문·박상혁·박주민(73년), 이재정·한준호(74년), 유정주(75년), 김용민(76년), 강선우·이탄희·홍정민(78년), 고민정·최혜영(79년)의원이 70년대 생으로 현역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80년대생으로는 신현영(80년), 김남국(82년), 장경태·장철민(83년), 이소영(85년), 오영환(88년)의원, 그리고 91년생으로 전용기 의원 등 30명의 ‘7080’의원에 ‘90년대생’의원까지 있습니다.

20대 국회에서 9명에 불과했던 7080의원이 3배가량 늘어났으니 세대 대표성이 증가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국민의힘 역시 20대 5명에 불과했던 7080의원이 21대들어서는 1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전체적으로는 21대 300명 의원 가운데 7080의원은 55명(민주당30명·국민의힘19명·정의당3명·국민의당1명·기본소득당1명·시대전환1명)으로 18.3%를 차지합니다. 20대에 21명(민주당9명, 자유한국당 5명, 바른미래당 4명, 정의당1명, 무소속2명)으로 7%에 불과한 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최연소 국회의원 역시 20대에선 86년생인 당시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이었지만 21대에선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92년생으로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21대에는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90년)과 민주당 전용기 의원(91년)까지 90년대생도 3명으로 늘었습니다.

‘40대기수론’의 대세를 형성한 당시 김대중(왼쪽부터)의원, 유진산 신민당 총재, 고흥문, 이철승, 김영삼 의원이 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선출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직전 20대 국회에 비해 7080의원의 수가 증가한 건 분명합니다. 그럼 메시지도 그만큼 늘어났을까요. 사실 국민들이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는 뚜렷한 세대와 시대교체 메시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70년대 생인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당권을 쥔 것과 같은 당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논란’이 있었지만 ‘7080세대’에 이어 9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담론을 내놓는 정치인은 아직 없습니다.

김종인이 쏘아올린 '40대기수론'..'새인물' 갈증
역설적이게도 최근 정치권에서 ‘40대 기수론’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 총선 당시 80세의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선 총괄선대위원장이었습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1970년대생 가운데 경제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서는 게 좋다”고 하면서 40대 기수론을 띄웠습니다. 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김 위원장이 일찌감치 40대 기수론을 내놓은 것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누구보다 빨리 읽어서였습니다. 민주당에서도 차기 대선주자로서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는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를 놔두고 끊임없이 ‘제3후보론’이 등장하는 배경도 ‘새 인물’ 갈증요인이 있습니다. 물론 생물학적 나이만으로 ‘새인물’을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20대에 비해 21대에 7080세대에 이어 ‘90년생이 온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럼에도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평균 나이가 ‘54.9세 남성’이라는 점은 굳건한 ‘남성연대’를 깨고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정치적 흐름을 꿰뚫기로 정평이 나 있는 김 위원장은 바로 이 고리를 건드려야 다음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 겁니다.



김영삼'40대기수론'원조..김대중·이철승 가세로 대세 형성
40대 기수론을 논하자면 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9년 11월 8일 만 41살의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김영삼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40대 기수론에 당시 김대중(45세)·이철승(48세) 등이 연달아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출마를 선언했다는 겁니다. 당시 유진산 신민당 총재가 “정치적 미성년”이나 “구상유취”라며 견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출마선언에 대해 언론은 “유진산·정일형·이재형 부총재나 고흥문 사무총장과도 사전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당 원로급과의 충돌을 각오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는데요. 당시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 이철승이 가세하면서 40대 기수론이 대세가 됐다는 점입니다. 2차에 걸친 후보 지명전에서 당시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야당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은 이미 역사가 됐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 호남권·충청권 온라인(온택트)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대중 자서전을 빌려 당시 상황을 옮겨봅니다.

<1970년 1월 초 신민당 임시 전당 대회가 열렸고, 유진산 씨가 총재로 선출됐다. 유진산 씨는 사쿠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야당성을 의심받고 있었다. 따라서 대중적 지지가 약했다. 총재직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 후보는 될 수 없었다. 그때는 이미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세대교체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40대 기수론’은 나도 동조하고 있었다. (중략) 당내에서는 40대 후보로 자연히 세명을 지목했다. 김영삼, 이철승, 그리고 나였다 문제는 유총재였다. 유총재는 40대 기수론을 잠재우려 직격탄을 날렸다. “구상유치의 정치적 미성년자들이다”(중략)1970년 1월24일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설 것을 공식 천명한 후 지명대회가 있기 전까지 약 8개월 동안 열심히 전국의 대의원들을 찾아다녔다. 당원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특히 경상도에서 그 열기가 뜨거웠다. 아내도 열성적이었다. 그 때 야당 대의원들은 산동네에 많이 살았는데 아내는 케이크를 사들고 가파른 길을 올라 대의원 집을 찾아갔다. 그런 선거운동은 대의원보다 그들의 부인과 가족들을 움직였다. 그것은 다시 가족들이 대의원을 움직이는 효과로 나타났다. 나는 표를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갔다. 전당대회 전날 밤에도 대의원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가 그들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재석 885명중 김영삼 421표, 김대중 382표, 무효 82표. /2차 투표 재석 884명 중 김대중 458표, 김영산 410표, 무효 16표. 나는 과반을 훨씬 넘어 대통령 후보에 지명이 되었다. 박수와 환호성은 그칠 줄 몰랐다. 한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역전극이었다.>

다시 2020년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박주민 의원이 지난 8월 당 대표 출마 당시 ‘당 지도부와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똑같은 평가를 받았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박용진 의원이 잊을 만 하면 강성 여권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는 이유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국 정치에 다시 40대 기수론을 대세로 끌어가기 위해 ‘양박(박용진·박주민)’에 가세하는 다른 ‘7080경쟁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해 보입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여쏙야쏙’은 여당과 야당 ‘속’ 사정을 ‘쏙쏙’ 알기 쉽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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