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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IB씨] 상법 근간 흔들겠다는 산은, 금도 넘었다

<9>한진칼 경영권 분쟁과 대한항공-아시아나 '빅딜'

오늘 친절한IB씨는 무려 23년 전 있었던 옛날 얘기로 시작한다. 부장님의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처럼 고루한 얘기가 절대 아니다. 드라마 뺨칠 정도(는 솔직히 아니지만), 아니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진그룹 ‘남매의 난’만큼 흥미진진한 얘기다.





대한민국을 덮칠 외환위기의 징후(signal)가 하나둘씩 나타나던 1997년 1월 8일. 서울 여의도 증권감독원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난다. 주인공은 정희무 당시 한화종금 사장. 목적은 ‘깜짝’ 기자회견이었고, 소재는 외환위기완 전혀 동떨어진 경영권 분쟁(네가 왜 거기서 나와!)이었다. 당시 한화종금을 두고 김승연 한화 회장과 박의송 우풍상호신용금고 회장이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한화종금은 1982년 한국화약그룹과 당시 증권시장의 유명한 큰손이었던 ‘백 할머니’ 백희엽씨가 공동출자해 만든 삼희투자금융이 모태였다. 이후 증자 등을 통해 김 회장은 꾸준히 지분을 늘렸다. 2대 주주로 밀려난 백 할머니의 아들 박 회장은 자신의 주식을 높은 가격에 사달라고 요청했지만 한화는 이를 뭉갠다. 1996년 7월 간판도 한화종금으로 바꿔 단다. 결국 참지 못한 박 회장이 행동에 나선 것은 직후인 1996년 8월. 우호세력(우학그룹) 등을 통해 주식을 비밀리에 사들였다.(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의 1면 기사로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그해 12월 결국 박 회장은 다음 해 2월 17일에 경영진 재구성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열자며 칼을 뽑아든다. (경영권 분쟁에 주가가 급등했음은 불문가지. 종합주가지수 700선이 무너지던 날 상한가를 쳤다!)

정 사장의 기자회견은 일종의 맞불이었다. 골자는 이렇다. 전날 이사회에서 400억 규모 전환사채(CB) 발행을 결의했고, 이를 평소 친분이 있는 거래처 3곳에 주당 2만1,8000원에 발행했다는 것. 내공 있는 독자라면 갸우뚱할 것이다. 경영권 뺏길 판인데 의결권도 없는 전환사채라니, 이 무슨 엉뚱한 번지수인가. 하지만 노림수는 있었다. 정 사장이 덧붙인 말이다. “한화종금 정관에는 사모를 통해 발행된 전환사채 인수자들이 발행 당일 즉각 주식전환을 발행사에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발행에 법적으로 아무런 무리가 없다.”(심지어 당시 한겨레 보도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재정경제원의 관계자의 발언도 인용돼 있다.) 실제 법적인 문제가 없을까.

박 회장 측의 판단은 달랐다. 당장 법원에 전환사채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신청과 전환사채 발행원인 무효소송을 냈다. 역시 싸움은 주고받아야 (구경하는 사람에겐) 제맛. 함무라비 법전이 노래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법에는 법이라고. 한화도 박 회장의 우호세력이 우학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 중 10% 초과분은 의결권이 없다며 법원에 곧장 맞소송 제기했다. 당시엔 법률자문을 맡은 김앤장과 태평양의 대결로도 화제를 모았다. 항상 그렇지만 경영권 분쟁의 단골소재인 폭로전도 이어졌다. 자, 결과는 어떻게 났을까.

23년 전 한화종금 경영권 분쟁... 법원 판단은 '주주 신주인수권' 보호였다
1라운드는 한화그룹이 승리. 2월 6일 서울지법 민사합의 50부는 박 회장이 낸 전환사채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의 결정문은 이랬다. “한화종금의 전환사채는 회사를 대표하는 권한을 가진 대표이사가 정관의 규정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회사와 거래관계 있는 제3자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를 무효로 할 수 없다.” (아, 예나 지금이나 법원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골자는 정관에 따라 이사가 발행했으니 적법하다는 것이다. 당시 상법의 규정도 그러했다.(이 부분은 뒤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드리겠다.) 표 대결을 예고했던 2라운드, 임시 주총도 결국 싱겁게 한화그룹의 승리로 이어졌다. 그런 시절이라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뒤늦게 분개해 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박의송 우풍상호신용금고 회장이 벌인 한화종금의 경영권 분쟁은 재벌을 대상으로 한 첫 적대적 인수합병(M&A)이었다. 당시만 해도 수권자본주의라는 우리 상법의 근본 철학이 각 조항에 그대로 녹아있지 않았던 시절. 그럼에도 당시 법원의 최종 결론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은 엄격히 보호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거꾸로 되돌릴 수 있을까.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묶는 항공업 ‘빅딜’을 준비하는 KDB산업은행이 이 시도를 하고 있다. 법원의 1심판결이 있었던 1997년 2월 6일 당시 MBC의 관련 보도.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976553_30717.html


애석해 마시라! 여기서 끝나면 흥미진진하다고 했던 친절한IB씨의 말이 거짓말이 된다. 일단락되는가 싶던 경영권 분쟁의 판도는 3개월 뒤인 3라운드에서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항고심 법원이 1심 판단의 근거가 됐던 상법의 법리를 전혀 달리 해석한 것이다. 5월 13일 서울고법 민사20부는 원심 결정을 뒤집고 “한화 쪽 전환사채 발행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당시 주문을 보면 이렇다. “대주주 간에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 쪽이 발행한 전환사채는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우호세력에 신주를 배정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이 인정된다. 이는 전환사채 제도의 남용이며 사실상 신주발행으로 ‘주주의 신주인수권(기억해두시라! 매우 중요한 법리다)’을 침해한 위법이 있다.”([서울고법 1997. 5. 13., 자, 97라36, 결정:재항고])

당시만 해도 상법은 이사회를 장악한 최대주주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우리 상법은 ‘개량된’ 수권자본제도를 택하고 있다.(어렵지만 꼭 이해해야 할 내용이다.) 수권자본제도는 주식회사를 세울 때 정관(기업엔 헌법이라 할 수 있다)에 발행예정주식을 정해놓고, 법인 설립 시엔 그 중 일부만 주식으로 발행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필요에 따라 신주를 발행해 발행주식(자본금)을 늘릴 수 있도록 한다. 신주 발행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면 된다. (주식회사 설립시 발행주식을 확정한 뒤 신주를 발행할 때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한 확정자본제도와 구분된다.)

문제는 신주를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를 대상으로 발행할 때다. 예를 들어 ‘땅콩’과 ‘고구마’가 주주이자 공동경영자인 (주)대한농장이라는 회사가 있다고 치자. 어떤 이유로 둘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헌데 이사회를 장악한 고구마가 제3자 배정으로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고구마는 친구 ‘감자’에게 신주를 준 뒤 땅콩을 경영 일선에서 쫓아낼 수 있다. 아, 이게 가능하면 애당초 분쟁 자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이사회를 장악한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도 사라진다. 우리 상법(418조1항)이 원칙적으로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엄격히 보호하는 이유다. 쉽게 말해 신주 발행할 때 1순위는 기존 주주라는 말이다. 흔히 유상증자 공시에서 많이 보는 일반주주 배정후 실권주 제3자 배정이라는 말이 이런 뜻을 담고 있다. (다만 418조 2항을 통해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정관에 규정한 바에 따라 제3자에게 배정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두었다. 단 경영상 목적에 경영권 분쟁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화종금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던 1997년은 상법이 개정되기 전이다. 당시만 해도 정관에 정해 놓은 대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시 상법의 골자는 이렇다. “주주는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그가 가진 주식의 수에 따라서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상법이 지금의 내용처럼 개정된 것은 2001년 7월 24일이었다.



자 이제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결론이다. 안타깝게 결과는 뒤바뀌지 않았다. 항고심이 전환사채 발행은 위법이지만,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했기 때문.(아무리 주문을 들여다봐도 ‘법알못’의 상식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다.) 손배소 등 남은 소송의 결과를 뒤바꿀 수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별무소용(別無所用)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 파고가 우리나라를 덮쳤고, 결국 한화종금은 상장폐지를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산은의 한진칼 출자는 '주주 신주인수권' 침해... 자본시장 23년전으로 후퇴
케케묵은 23년전 얘기를 꺼낸 든 것은 KDB산업은행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항공업 ‘빅딜’ 때문이다. 현재 산은 등 채권단은 한진그룹과 아시아나항공(020560) 매각 협의를 하고 있다.(16일 산업경쟁력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의결을 하니, 결론도 코앞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국적항공사를 한진그룹을 중심으로 일원화하겠다는 것. 빅딜이 성사되면 산은은 골칫거리인 아시아나항공을 털어내고 대한항공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세계 7위 항공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여기까진 그리 문제랄 게 없다. 20년째 품고 있는 대우건설이나, 최근에서야 현대중공업으로 밀어낸 대우조선해양을 생각해보면 산은의 빠른 행보가 되레 반갑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자금을 매각하는 산은이 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산은은 제3자 배정을 통해 한진칼의 신주를 받는 방식으로 인수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로 미증유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이 무슨 돈이 있을까. 특혜라면 특혜일 수 있다. 하지만 위기에 놓인 항공업이 이를 이겨내고 세계 7위으로 도약만 할 수만 있다면 혈세라고 아까울까. 더욱이 구조조정 전문 정책금융기관(잘해서 전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기 때문에 전문이다)이 해당 기업을 위해, 그 기업 종사자를 위해, 나아가 국가 기간산업을 위해 하겠다는 데 누가 막겠는가. 전 세계 국적항공사 간 M&A가 활발한 것도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헌데 뭔가 찝찝하다. 뭐가 문제일까. 앞서 한화종금 사례를 잘 이해한 독자라면 금방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이 익히 아는 대로 지금 한진그룹은 살벌한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사모펀드(PEF) KCGI, 그리고 반도건설의 3자 연합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칼을 놓고 싸우는 남매의 난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지분율대로 라면 이르면 내년 3월 주주총회, 늦어도 내후년 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은 3자 연합으로 넘어간다.(3자 연합은 신주인수권부사채 포함 46.71%, 조 회장 측은 41.40% 표를 확보해 놨다.)

사진 왼쪽부터 차례대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그리고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 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한진칼을 두고 벌어지는 이 가족다툼에 사모펀드(PEF)인 KCGI와 반도건설이 조현아 전 부사장 측에 가세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이 진흙탕 싸움에 KDB산업은행이 뛰어들었다. 부실기업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 정도면 경영권 분쟁 부문 역대 최고 흥행작이 아닐까 싶다.


2001년 개정된 상법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이후 신주발행 무효 소송과 관련한 판례도 일관적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것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위법이라는 것.(우리 상법이라는 수권자본제도를 채택했다는 것에 비춰보면 어쩌면 당연한 얘기.) 더욱이 한진칼은 정관에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의 범위도 크게 좁혀놨다. 한진칼의 정관 제8조에서 정한 이사회 결의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는 경우는 이렇다. 긴급한 자금조달(금융기관에 한해), 그리고 사업상 중요한 기술도입, 연구개발, 생산·판매·자본제휴. 통상의 주식회사가 정관에 ‘경영상 목적’이라는 좀 더 모호한 문구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산은이 한진칼에 출자를 하는 것은 이래저래 위법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모를 일이다. 이 같은 위법 논란을 한 번에 무마시킬 수 있는 솔로몬의 해법을 산은이 내놓을지 말이다. 가능성은 딱 하나. 3자 연합이 찬성하는 경우다.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3자 연합은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가 목적이라면 대한항공(경영권 분쟁과는 전혀 상관 없다)이 인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대한항공이 인수주체가 되면 조원태 회장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게 함정. 애써 인수해놓고 내년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뺏기기라도 하는 경우엔 아시아나항공까지 제3자 연합에 바치는 꼴이 된다.) 행여 한진칼이 유상증자를 한다면 우선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증자할 거면 법대로 일반주주에게 먼저 배정하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명분 싸움 아니다... 구조조정 필요하지만 원칙 지키는 게 더 중요
한진칼만 아니면 된다. 명분이 있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빅딜,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은이 한진칼에 출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산은이 3자 연합과 조 회장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해도 의미가 없다. 이미 그 순간부터 상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3자 연합이 이를 믿고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 않는다면 표면상으론 법적 분쟁이 안 생길 수는 있다.) 그래도 한진칼이어야만 한다면, 적어도 이 싸움이 누군가의 승리로 일단락된 후여야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근로자를 볼모 삼아, 혹은 국가 기간산업의 명운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누군가 “뭣이 중헌디”라고 되물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처럼 ‘실용’을 중시하는 분들이면 던질 법한 질문이다. 헌데 실용보다 중요한 게 원칙이다. 차후 누군가 이를 악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가 특정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지 않았냐고 하면 뭐라 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는 상법을 근간으로 굴러간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그 무엇에도 우선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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