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금리 하락 때문에 강세를 보인 것처럼 주식의 ‘밸류에이션 멀티플(기업의 순이익·순자산 대비 주가 비율)’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치료제가 성과를 거둬 경제가 회복 국면으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합니다. 코로나19로 약세를 보였던 종목들의 가격도 회복되면서 증시의 강세 기조가 이어지리라 판단합니다.”
조재민(58·사진) KB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내년 코스피 예상 범위(밴드)를 2,400~2,900 선으로 예상한다”며 “한국·미국 주식의 비중을 확대하고 장기국채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금리의 영구적 약세’가 주가 강세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리, 즉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주식처럼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의 가격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소위 말하는 ‘멀티플’의 상승이다.
그는 “과거 평균 금리가 4~5% 수준이었을 때 주가수익비율(PER)이 미국 증시는 15~20배, 한국은 10~15배 사이였다”며 “금리가 다시 4~5%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미국 증시는 20~25배, 한국 증시는 15~20배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금리가 1%일 때와 5%일 때와 동일 선상에서 (주식 등) 현금 흐름이 창출되는 자산의 가치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증시의 12개월 선행 PER은 16배, 미국은 22배로 추정된다.
조 대표는 주식·채권·외환 등 금융 투자 각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지난 1988년 씨티은행 외환 딜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동양종합금융, 크레디아그리콜앵도수에즈 홍콩 지점 한국데스크, 스탠다드은행 홍콩 지점 등에서 채권 업무를 맡았다. 1999년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을 공동 창업한 후에는 KB자산운용·KTB자산운용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20년 넘게 자산운용사를 경영해왔다.
조 대표는 금리 외에 주식 재평가의 다른 요인으로 세계 경제의 정상화를 꼽았다. 그는 “코로나19 치료제·백신 효과와 겨울 시즌 내 코로나19 확산 위험, 이렇게 두 변수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장세”라면서도 “결국에는 백신·치료제가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로 피해를 봤던 경기 민감주, 가치주의 주가가 회복되면서 전체 주가지수가 한 단계 더 상승한다”고 내다봤다.
기술주에 대해서는 “코로나19의 피해가 줄고 경기가 정상화하면 금리가 상승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약세일 수 있다”며 “10~20% 정도 조정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올해 기술주 주가가 오른 것은 ‘기술·독점력에 따라 미래에 큰 수익을 낼 것’이라는 스토리 때문”이라며 “(유동성 완화 정책에 따른) 금리 하락이 주가를 올린 핵심 요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금리가 0.5%포인트 정도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에서 당분간 강도 높은 재정 확장 정책을 펼치고 일시적으로 경기회복 기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 대표가 장기국채 비중을 줄이라고 권한 이유이기도 하다. 장기국채는 단기국채보다 만기가 더 길다는 점에서 이자율에 더 민감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다만 그는 “채권 금리가 0.5%포인트가량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시장이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대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네 번 올렸던 2018년 당시 증시가 약세를 보인 바 있다”며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기에 올린다면 시장 금리가 1~2% 상승할 수 있어 타격이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준이 평균물가목표제(AIT)를 도입하는 등 기존보다 금리를 낮게 가져가겠다는 입장이어서 각국 중앙은행이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의 ‘영구적 저금리’ 주장에는 “물가가 강하게 오르기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조 대표는 “물가는 공산품·서비스·원자재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세 부문에서 물가 상승을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 대표는 “공산품은 전 세계에 공급망이 구축돼 있는 만큼 가격이 잘 안 오르는 경향이 있다”며 “서비스 가격은 인건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최근 취업난이 계속되는데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고 있는 만큼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셰일가스 혁명과 전기차 수요 증가 등으로 원유 가격 상승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원자재 물가 상승 폭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대표가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 꼽히는 금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인 점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는 “금은 유한한 재화인 만큼 유동성이 풀리면서 투기적인 상승세를 보였다”며 “올해 이미 많이 상승한 만큼 오르더라도 온스당 2,000달러 주변에서 가격이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