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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성폭력·전쟁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힘든 작업이지만 알릴 의무 있어"

‘위안부’ 만화 '풀' 로 만화계 오스카상 수상

여성 인권 문제에 공감하는 세계 독자들 호평

부천 만화박물관서 열리는 기획 전시에도 참여

"여성 인권·평화 절실한 세계 곳곳서 관심 커"

"작품에 에너지 쏟아 부으면 새 에너지 충전돼"

김금숙 작가가 일제 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되새기는 만화 전시회 ‘열여섯살이었지’를 찾아 전시 공간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정영현기자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시인 김수영은 시 ‘풀이 눕는다’에서 한국 민중이 풀을 닮았다 했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스러져도, 군홧발에 짓밟혀도 끝끝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거친 들판의 풀을 닮았다 했다. 혹독한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고 인내하고 저항하며 마침내 이겨내는 불굴의 정신을 풀에 비유한 것이다.

만화를 그리는 김금숙 작가도 그리 생각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영문도 모른 채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등지까지 강제로 끌려가 생지옥을 경험했다가 훗날 역사의 산증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서 풀을 떠올렸다. 할머니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그린 490쪽의 흑백 만화에는 그래서 ‘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부천 만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열여섯살이었지’.


2017년 출간된 만화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독자와 출판계의 심금도 울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풀’을 최고의 만화로 꼽았고, 영국 가디언은 최고의 그래픽 노블로 선정했다. 지난 10월 만화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은 이 책에 ‘최고의 국제도서상’을 안겼다.

하지만 김 작가는 마냥 즐겁지 않다. 할머니들의 고통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가혹하다’는 단어조차 가볍게 느껴지는 극한의 고통에 평생 짓눌려 살았건만 가해자는 아직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고통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고난과 방해가 있을지라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계속 알려야 한다. 이에 김 작가는 여성가족부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공동 주관한 전시 ‘열여섯 살이었지’에 다시 한번 참여했다. 전시회에서 김 작가의 만화 속 장면들은 몇십 배로 확대돼 대중과 만나고 있다.

김금숙 작가가 경기도 부천 만화박물관에서 마련 된 ‘열여섯살이었지’ 전시 공간을 둘러 보고 있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할머니들의 삶을 만화로 그리는 건 힘든 작업이었다”며 “하지만 그런 만큼 작가로서 욕심도 있었고, 의무감도 있어서 더 몰입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여성 이야기지만 남성 독자들로부터도 호평을 많이 받았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할머니, 어머니, 누나 또는 아는 여성들의 삶이 생각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꼭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더라도 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삶에 공감하는 것”이라며 “전쟁과 생이별, 난민 등 ‘풀’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면서도 현재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풀’ 번역·출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 역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김 작가는 전했다. 책은 현재 13개국에서 출간이 완료됐거나 출간 작업이 진행 중이다.

김 작가의 말대로 할머니들은 가난, 전쟁, 납치, 생이별에 협박, 성폭력, 감금, 구타, 질병, 굶주림, 소외, 멸시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평생에 걸쳐 다 겪었다. 게다가 이런 잔혹이 20세기를 지나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 작가는 여성 인권과 평화가 절실한 지역에서 ‘풀’이 많이 출간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는 “최근에도 전쟁의 아픔이 있었고 여성 희생자가 많았던 나라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며 “인권 신장이 필요한 곳에서 작품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부천 만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열여섯살이었지’.


김 작가는 최근 한국전쟁 당시 이산의 아픔을 그린 만화 ‘기다림’도 냈다. 이 역시 한국의 아픔이지만 전쟁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지역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다. 김 작가는 “작품을 할 때마다 다신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지만, 작품에 에너지를 쏟아내는 만큼 또 새로운 에너지를 받게 된다. 아직 그리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 부천 만화박물관에 마련 된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전시회 ‘열여섯살이었지’는 내년 3월까지 진행 된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공개되는데 4개국어로 소개된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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