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중점 추진해온 법안이 잇따라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내년부터 예보의 권한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부터 예보가 금융기관의 부실 정리 계획을 작성하고 실수로 잘못 송금한 돈의 반환을 지원하는 게 유력해진다. 업계에서는 예보의 권한 강화가 부담스럽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 금융권 및 정치권에 따르면 예보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금융 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 개정안(RRP제도)이 2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RRP제도는 시중은행 등 금융 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유동성 부족, 자본 비율 하락 등 위기 상황을 대비해 미리 건전성 회복을 위한 정상화 계획을 수립해 금융 당국에 제출하는 것이다. 건강할 때 죽음을 대비한다는 취지에서 은행의 ‘사전 유언장’ 제도라고도 불린다.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정상화 계획을 수립하면 예보는 이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이 스스로 건전성을 회복할 수 없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부실 정리 계획을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금감원을 통해 금융기관에 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예보는 수년째 연간 업무 계획으로 RRP제도의 법제화를 제시했던 만큼 법안 통과로 내년 가을 제도가 본격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보가 RRP제도 외에 중점 추진해온 착오 송금 반환지원법도 현재로서는 ‘파란불’이다. 관련 법안은 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오는 7일 정무위 전체 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내년부터 예보의 업무에 착오 송금 피해 반환 지원 업무가 추가된다. 예보가 금융회사·중앙행정관청·전기통신사업자 등으로부터 착오 송금 수취인 관련 정보를 받아 반환을 촉구할 수 있게 된다.
예보의 두 숙원 사업이 내년에 모두 본격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해온 정상화·정리 계획에 대한 의무화로 업무 부담이 가중된데다가 착오 송금의 경우 악용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최종 법안에서 예보가 금융기관에 요청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로 업무 및 재산 상황에 관련된 자료로 제한한 것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서다. 착오 송금 반환지원법 역시 단순 착오 송금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예보가 반환 지원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추가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좋은 제도도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 도입해야 한다”며 “이 제도로 예보의 기관 역량이 넓어지면 다른 기관에서도 금융사에 대한 감독을 요구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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