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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수처 아닌 ‘空秋處’의 운명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사법체계 망가뜨리고 출범할 공수처

검사 무경력자로도 전부 구성 가능

수사 역량보다 정치성향으로 채워져

檢 개혁 실종된 '껍데기 기관' 가능성





페르시아 고관대작의 하인 한 명이 죽음의 사자와 마주쳤다. 오늘 밤에 데려가겠다는 말에 기겁한 하인은 주인에게 간청해 제일 빠른 말을 얻어 타고 테헤란으로 도망갔다. 조금 뒤에 죽음의 사자가 주인에게 왔고 주인은 그에게 “왜 내 하인을 데려가려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죽음의 사자가 말했다. “원래 그 사람 운명에 의하면 오늘 밤 테헤란에서 데려가도록 돼 있는데 아직도 여기 있어서 사실 나도 깜짝 놀랐소.”

여기에는 운명은 피하지 못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피하지 못할 뿐 아니라 피하려는 그 시도가 운명을 재촉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이런 상황을 담고 있다. 테베 왕 라이오스는 아들로 인해 자신이 죽고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나자 내버리고 죽이게 하였으나 아기는 목숨을 구했고 장성한 아들은 나중에 우연한 다툼 끝에 아버지를 죽인다. 물론 둘 다 부자지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대 국회에서 패스트 트랙 반칙, 연동형 비례제 미끼 활용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통과를 강행한 바 있던 청와대와 민주당은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시행된 공수처법을 다시 날치기로 개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망동으로 엉망이 돼버린 미증유의 검찰 갈등 사태에 관하여는 침묵으로 책임 회피를 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2021년 새해 벽두에는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여당에 각종 지시를 내렸다.

무엇 때문에 검찰 사태에서는 뒤로 숨어 있던 대통령이 공수처 출범과 관련해서는 그렇게 안달하고 있는지, 이제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 추 장관의 거침없는 맹활약 덕분이다. 당장은 월성 원전과 관련된 수사,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수사 등 권부의 핵심을 향할 수도 있는 검찰의 칼날을 공수처라는 방패로 막고, 멀리는 ‘정권의 충견’으로서 사정 기관을 곁에 두고 마음대로 써먹자는 음험한 기도가 노골화된 지는 꽤 됐다. 검찰 개혁으로 포장된 입법 테러이다.



집권 세력 스스로 감지하는 어떤 운명을 피해 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지만 이들의 행태 속에서 죽음의 사자를 피해 테헤란으로 달아난 하인, 신탁을 피하기 위해 아들을 내다 버린 라이오스 왕의 몸부림을 본다. 어쩌면 이들은 가만히 있었으면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수처에 목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쨌건 공수처는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과 사법 체계를 망가뜨리고 더럽힌 원죄와 함께 닻을 올릴 것이다. 그렇게 출발하는 공수처의 미래는 검찰 개혁이 실종된 껍데기 수사기관, 오직 추미애식 망나니 칼춤이 어른거리는 권력의 충견, 민주주의에 대한 맹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사 경력이 전무한 자들을 수사 검사 총원의 최소한 절반까지 채워야 하고, 심지어는 전부 무경력자로 구성해도 무방하도록 만들어놓은 데서도 공수처는 수사 역량보다는 이념과 정치 성향으로 채워질 것을 예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수처보다는 ‘공추처(空秋處)’가 이 위헌(違憲) 사생아에게 적합한 이름이다.

실제로 국내 포털 검색란에 ‘공추처’라고 입력하면 ‘공수처’가 뜬다. 신기하게도 인공지능(AI)이 공수처가 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AI는 ‘공추처’가 언젠가 자신을 탄생시킨 자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워할수록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는 사실은 신탁이자 빅데이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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