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장기 주택 공급량 예상치를 두고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국책 연구 기관인 국토연구원의 예상치를 근거로 중장기 공급량이 안정적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토연은 국토교통부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는 주장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장밋빛 구상’만 내놓고 있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서울 年 5.9만 가구 공급” 근거는 ‘깜깜이’=14일 정부와 국토연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향후 아파트 공급량과 관련해 오는 2023~2027년 서울 기준으로 연평균 5만 9,0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산출량 근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국토연 분석에 따른 수치’라고만 언급했다. 앞서 국토연은 지난달 25일 공개한 ‘수도권 중장기 주택 공급 전망과 시사점’ 리포트에서 이 기간 아파트 공급량이 연평균 수도권 22만 2,000가구, 서울 5만 9,000가구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정작 국토연 측에서는 ‘국토부가 제시한 자료에 의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고 했다. 국토연 관계자는 중장기 공급 물량 추산치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정부의 계획 물량 수치를 받았을 뿐 세부적인 근거 기준은 우리도 모른다”며 “정부의 공급 계획에 따라 온전히 공급된다고 가정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결국 국토부가 자체 설정한 목표치를 연구원에 전달한 뒤 그 결과를 다시 인용하는 식으로 근거 자료를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수도권 127만 가구 주택 공급’ 계획을 담은 8·4 공급 대책을 기반으로 공공 택지에서 총 84만 5,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 2023년 이후 공급량은 수도권 47만 8,000가구, 서울 8만 9,000가구다. 여기에 민간 공급분 등을 더해 서울 아파트 연평균 5만 9,000가구를 추산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민간에서는 2023년 이후 물량의 경우 입주자 모집 공고 등 구체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어서 공급 추정치를 산출하지 않고 있다.
◇‘낙관론’ 펴는 정부…민간과 격차 커져=정부의 공급 물량 추산은 민간의 예상과 괴리가 커 수요자들에게 혼선을 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2년까지 단기 물량에서는 민간과의 예상치 격차가 급격히 커지는 상황이다.
부동산114가 입주자 모집 공고를 기반으로 추정한 결과 서울 아파트 공급량이 내년 2만 8,000여 가구, 2022년 2만여 가구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정부는 향후 2년간 공급량이 소폭 줄기는 하지만 내년 4만 1,000가구, 2022년 3만 7,000가구로 비교적 안정적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분양 공고를 기준으로 물량을 집계하는 민간과 달리 정부는 후분양 및 임대 물량, 30가구 미만 빌라형 아파트 등의 물량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차이를 고려해도 최근 격차는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실장은 “중장기 공급 대책의 경우 제대로 검증한 사례가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 뒤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며 “명확한 근거를 두고 산출했다기보다 시장에 ‘충분한 공급을 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차원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친 ‘낙관론’으로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경우 자칫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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