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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세계일주...길 위 모든 것이 부처였네

■책꽂이-다만 나로 살 뿐

원제 지음, 수오서재 펴냄

수행 위해 45개국 유랑한 원제스님

다양한 만남에서 얻은 깨달음 담아

"좋든 안좋든 모든 경험이 수행"

세계 일주 중 페루 우아라스 69호수에 들른 원제스님./사진제공=수오서재




지난달 전국 제방선원에서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수행에만 전념하는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됐다. 동안거는 석 달 간 산문(山門) 출입을 금하고, 하루 10시간씩 좌선 수행을 이어가는 집중 수행기간이다. 여름에 진행되는 하안거까지 더하면 스님들은 일 년의 절반을 깨달음을 위한 안거 수행에만 매달린다. 이런 패턴으로 살아가는 스님들이 연간 수천 명에 달한다. 선원에서 살아가는 일반 수행자들의 일상이다.

원제스님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법전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그동안 20여 안거를 지낸 수좌승이다. 꼬박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좌선 수행에만 매달려왔다. 출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는 데에만 써온 셈이다. 그랬던 스님이 돌연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하겠다’며 산문을 박차고 나섰다. 안거를 4차례나 거르고 택한 나선 만행(萬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닦는 불교식 수행)이었다.

신간 ‘다만 나로 살 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원제스님의 만행기다. 2012년 9월에 산문 밖으로 나가 2014년 10월까지 총 25개월에 걸쳐 경험한 세계 여행의 기록을 두 권의 책에 나눠 담았다. 승복을 걸치고 여행길에 오른 스님은 티베트 카일라스에서 시작해 네팔, 인도를 거쳐 유럽과 남미, 미국까지 아우르는 세계 5대륙, 45개국에 걸친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 그리고 수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인들의 삶의 현장을 솔직한 기록으로 남겼다. 스님은 “이 책은 세계 일주의 기록입니다. 또한 눈앞의 허공을 도량 삼아 살아가는 한 수행자의 조금은 특별한 수행기이자,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스님은 평소 절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자신이 세계 일주에 나선 것을 두고 스스로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평범한 수행자의 삶을 살아온 그가 세계 일주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한 도반 스님의 영향이 컸다. 출가 전인 1990년대 티베트고원 여행담을 전해 들은 스님은 언제고 세계 일주를 완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해인사 시자 소임을 마친 2012년, 스님은 마침내 세계 일주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그동안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하겠다는 결의가 뒤따랐다.

2012년 9월, 산문 밖을 나서며 만행은 시작된다. 커다란 배낭은 침낭과 모기장, 가사와 승복, 카메라와 노트북, 트레킹화와 샌들, 비상약 등 평범한 여행자의 물품들로 채워졌다. 만행 중에도 매일 참회 108배를 하겠다며 108 참회문과 출가 당시 좌우명으로 삼았던 성철스님의 ‘불기자심(不欺自心, Don’t deceive my own mind)’을 한글과 한자, 영어로 새긴 명함도 챙겼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이기에 좋은 숙소나 음식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고, 여행하는 도시의 현지인 집에 머물 수 있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여행자 네트워크)을 통해 식비와 숙박비를 절약했다. 이러한 여행 방식을 택한 것은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를 알리고, 선(禪)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스님만의 여행 목적도 반영됐다.



여행 중 스님은 선 수행을 실천하는 중국인, 출가를 준비하는 인도인,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관음선종센터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인을 만난다. 수행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외국인들을 위한 법문을 펼치며, 영국의 한 교회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성탄절 예배를 보기도 한다. 특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일 때에는 축구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가 현지 신문에 사진이 실리는 뜻밖의 경험을 하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예수상을 찾아 기도하는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책 속에서 스님은 여행기간 내내 삿갓을 쓰고, 두루마기 승복을 걸친 채 손에는 염주를 들었다.

모든 경험이 긍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가방을 통째로 도난당하는가 하면,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고행의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스님은 책에서 돌이켜보니 모든 순간순간이 수행이었고, 모든 이들이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제가 세계 일주를 하며 꼭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든 안 좋든 그 수많은 상황을 접하며 낱낱의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움으로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경험을 치러냄이 모두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저는 세계 일주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스님은 현재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각 1만5,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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