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도착한 싱가포르에서는 지난 4월부터 백신 확보 계획이 가동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발 집단 감염으로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었지만, 막후에서는 백신 확보를 위한 잰걸음을 시작했던 셈이다.
◇신규확진자 1,000 명 넘는 위기에도 전문가 패널 이미 백신 확보 작업 시작
23일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 및 CNA 방송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4월부터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4월은 싱가포르에 최대 위기가 닥쳤던 시기다.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30만 명 가량의 이주노동자가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집단 감염이 증가하더니, 월말에는 하루 1,000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동남아 최대 코로나19 감염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정부의 첫 단계는 공공 및 민간분야에서 18명의 과학자 및 임상의들로 백신 및 치료법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35개가 넘은 코로나19 백신 후보들을 점검했다. 패널은 당시 개발 중이던 다양한 백신 방식을 모두 고려했지만, 생산에 더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해 RNA (리보핵산) 방식에 더 주안점을 뒀다.
지난 21일 1차분이 싱가포르에 도착한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공동 개발 백신이 ‘메신저 리보핵산’(mRNA·전령RNA) 방식이다. 미국 모더나사의 백신도 같은 방식이다.
◇강소국의 힘…“제약업체들과 강고한 관계 활용해 비공개 협정 체결”
4월 말이 되자 싱가포르 정부는 패널이 추천한 백신 후보들에 대해 전략적으로 구매 협상을 할 ‘백신 및 치료법 기획단’을 구성했다. 최우선 목표는 백신 조기 확보였다.
이들은 강소국 싱가포르 경제의 힘을 활용했다. 레오 입 기획단장은 “백신 개발업체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는 데 경제개발청(EDB) 관리들의 힘을 빌었다”면서 제약업체는 물론 바이오 업체들과 EDB 사이에 형성된 강고한 관계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싱가포르는 약 40개의 비공개 협정을 맺었다고 전문가 패널의 벤자민 싯 교수는 설명했다. 이를 통해 백신 개발 과정에 대한 기밀 데이터에 보다 빨리 그리고 심도 있게 접근했다.
◇6월부터 선구매 계약…“초기 주문명단 올리기 위해 최대한 빨리 결정”
이후 싱가포르는 6월 미국 제약업체 모더나와 첫 선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계약금도 지불했다.
패널을 이끈 싯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선구매 계약이 아시아에서 첫 백신 확보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싯 교수는 “우리가 백신 구매를 원한다고 해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거대 시장에 대량으로 팔려나갈 수 있기 때문에 백신 구매가 가능하겠느냐가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싱가포르를 초기 주문자 대장에 올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결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싱가포르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중국의 백신 개발업체 시노백 등 최소 2개 업체와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고도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확보한다는 계획에 따라 다른 백신 후보들을 추리고 확보하는 노력을 계속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양한 백신 후보 업체들과 접촉한 것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식량과 에너지와 같은 필수 자원 확보를 위해 사용하는 ‘다양화’ 방침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입 단장은 “가장 유망한 백신이라 하더라도 성공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백신 후보들에 대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싱가포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11개월이 지나 첫 백신이 도착할 수 있었던 데 대해 결코 요행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입 단장은 “이 기간 끊임없이 그리고 조용히 막후에서 노력해 온 수십 명의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제약업체, 바이오메디컬 허브 싱가포르서 백신 출시 원할 것”
싱가포르는 추가로 10억 달러(약 1조1,100억 원)를 들여 백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 백신 공급을 목표로 WHO(세계보건기구) 등이 주도하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참여를 비롯해 치료법과 백신의 국내 개발 지원 그리고 싱가포르 내 백신생산 업체들에 대한 장기적 지원 등을 위한 자금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인구 570만 명가량인 싱가포르의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 주문이 협상력에 영향을 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EDB 고위 관계자는 많은 제약업체는 싱가포르를 아시아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중심지로 인식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장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제약업체들은 그들의 백신을 싱가포르에서 출시하고 접종하는 데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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