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자신의 암살을 시도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산하 독극물팀의 요원과 통화해 암살 증거를 확보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CNN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영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벨링켓’, 독일 더슈피겔 등과 함께 3년 이상 나발니를 추적한 FSB 독극물팀 요원 6∼1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CNN은 독극물팀 요원들에게 나발니 암살에 관해 물었으나, 이들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나발니 본인이 러시아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관리라고 신분을 속이고 요원 콘스탄틴 쿠드랴프체프와 통화했다. 나발니의 전화번호는 FSB 본부의 전화번호로 표기됐으며, 나발니는 암살 작전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쿠드랴프체프를 속였다.
그를 FSB의 고위 관리라고 믿은 쿠드랴프체프는 암살 작전의 전모를 털어놓았다고 CNN은 전했다. 통화기록에 따르면 독극물팀은 나발니의 속옷에 신경작용제를 묻혀 그를 암살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발니가 어떻게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느냐고 묻자 쿠드랴프체프는 “속옷”이라고 답했다. 다시 한번 나발니가 정확히 신경작용제를 묻힌 부위를 캐묻자 쿠드랴프체프는 “속옷 사타구니 안쪽”이라고 대답했다.
암살팀은 나발니가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숨질 것으로 확신했다고 CNN은 전했다. 나발니는 지난 8월 국내선 비행기로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던 중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였으며, 기장은 모스크바가 아닌 옴스크에 착륙했다. 쿠드랴프체프는 “모스크바까지 비행시간은 3시간이었고, 이는 긴 비행시간”이라며 “만약 비행기가 도중에 착륙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나발니가 신경작용제의 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냐고 묻자, 쿠드랴프체프는 “내가 알기로 우리는 조금 더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CNN은 독극물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해당 비행기가 모스크바까지 날아갔으면 나발니는 틀림없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쿠드랴프체프는 나발니 독살 시도가 있은 지 닷새 후인 8월 25일 옴스크로 가 속옷의 흔적을 제거했다고 CNN은 밝혔다.
쿠드랴프체프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옴스크 친구들이 경찰과 함께 속옷을 가지고 왔다”며 속옷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발니가 “그 옷 때문에 놀랄 일은 없겠나”라고 묻자, 쿠드랴프체프는 “그것이 우리가 몇 번씩 그곳에 간 이유”라고 답했다.
독살 증거를 확보했다는 나발니의 주장에 대해 FSB는 이를 외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계획된 ‘도발’이라고 밝혔다. FSB 공보실은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나발니가 인터넷에 발표한 이른바 ‘조사’는 FSB와 그 직원들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것을 목표로 계획된 도발”이라고 반박했다.
공보실은 또 “이는 외국 정보기관의 조직적, 기술적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발니와 소속 직원 간의 통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은 ‘가짜’라고 주장한 FSB 공보실은 나발니가 사용한 스푸핑(전화번호를 바꾸는 기술)은 잘 알려진 외국 정보기관의 도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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