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중삼중 과잉처벌 여전한 중대재해법..."기업은 안중에도 없다"

[이슈&워치]

안전사고 땐 최소 징역 2년 등

기업 옥죄는 큰 틀엔 변화 없어

"생색만 낸 수정안" 재계 반발

백혜련(왼쪽)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참석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강은미(오른쪽) 정의당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다소 완화하고 중소기업 적용을 추가 유예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전히 기업들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기업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생색을 내면서 기존 발의안을 일부 수정한 셈이지만 형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에다 추가 입법하는 이중삼중의 과잉 입법으로 위헌 소지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협의안에 대해 노동계가 “차 떼고 포 뗀 격”이라며 정부 여당을 압박하고 있어 다시 규제가 대폭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9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법무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은 전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중대 재해기업 처벌과 관련해 정부 협의안을 제출했고 여야는 이날 법사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했다.

정부 협의안을 보면 경영계에서 강력히 반대했던 경영 책임자에 대한 징역형 적용 등의 내용은 큰 틀의 변화가 없고 기업들의 면책을 위한 조항은 여전히 애매하다.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다하지 않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 형벌은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상의 벌금’에서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상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하향 조정됐다. 하지만 사업장 안전에 직접 관계하지 않은 경영 책임자에게 징역형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경영계의 주장은 아예 반영되지 않았다. 면책을 위한 안전 보건 의무는 유해 설비, 추락 붕괴 위험이 높은 장소에서의 예방 조치로 명확하게 하려 했지만 여전히 어떤 것이 유해 설비이고 위험이 높은 장소인지 구분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협의안에 담긴 배상책임과 입증책임, 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 조항이 안전 의무를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해 구체적인 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한다고 해도 또 다른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영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일부 규정이 다소 완화됐지만 본질적인 부분이 해결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날 오전 법사위 여야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을 찾아 신중한 검토를 요구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모든 책임을 경영 책임자에게 씌우는 한풀이식 법안”이라며 “겉으로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다지만 결국 선거용이어서 법안의 의도조차 선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법무부·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가 경영계의 의견을 반영해 기존 의원 법안을 일부 수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경영계는 물론 노동 전문가들도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 안보다는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이중 삼중의 과잉 입법인데다 배상 책임과 입증 책임, 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 조항이 안전 의무를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기업 경영을 옥죌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의무 이행에 따른 면책조항은 아예 없어 ‘당근’ 없이 ‘채찍’만 휘두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위법행위 ‘불분명’한 이중 삼중 겹규제=우선 지적되는 부분은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가 책임져야 할 의무 등이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정부안 3조(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에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조직·인력·예산 등 안전 보건 경영 체계 수립 △중대한 건강 장해를 일으키는 물질 취급 작업, 추락·붕괴 등 사고 발생 위험 장소 작업 때 예방 계획 수립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법령에 따른 개선·시정 등 사항에 대한 조치 △재해 원인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위험 방지 관리·감독 조치를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 법인 등에 의무화했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고 하지만 조항에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중대재해 발생 때 기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등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대원칙은 만들어졌지만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어떤 의무를 위반해 처벌을 받는지는 불명확하다”며 “사업주 등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정교하고 세분화해 만들지 않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자칫 회사 경영만 악화시키는 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도 “기업 책임자와 사업주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유해 위험 방지 업무 범위 등도 명확하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형법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 등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가해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직무 유기 범위도 ‘모호’…정부 부처는 왜 빼나=중앙행정기관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중대재해 발생 때 책임을 지는 ‘경영 책임자’에서 삭제했다는 점도 문제다. 행정 영역이 민간과 달리 관리·지배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임 기간도 짧아 중앙행정기관·지자체장을 포함하는 게 무분별한 행사 책임만 부과시킬 수 있다는 게 정부 측의 입장이지만 이는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는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간에 모범을 보여야 할 중앙행정기관·지자체가 오히려 책임 소재에서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존 ‘결재권자인 공무원’에서 ‘법령에 따른 인허가권 또는 감독권을 가진 공무원이 형법상 직무유기죄를 범했을 경우’로 바꾼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직무 유기라는 영역이 불분명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변호사는 “고의 유무에 따라 어디까지가 직무 유기인지를 두고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고의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법을 토대로 처벌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도 “직무 유기 혐의가 인정된 공무원에 대해서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하자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으나 현실적이지는 않다”며 “직무 유기 혐의가 법원에서는 거의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근 없는 채찍…의무만 강조=전문가들은 의무의 명확성 확보 등과 함께 면책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받는 기업들에 동기를 부여하자는 차원에서다. 채찍이 아닌 당근도 있어야 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시설 개선이나 안전 조치에 주력했다면 면책해주는 조항을 만들어 개선 노력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야 하지만 정부안에는 없다”며 “의무만 강조해 처벌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기업들은 소송과 재판을 오가며 각종 비용만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면책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기업은 징벌적 배상만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각종 리스크를 지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려는 사업주는 없을 것”이라며 “신규 투자하려는 기업이 줄면서 결국 고용 악화 등 국내 경제를 침체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변재현기자, 안현덕·조권형·손구민기자 alway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