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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에 자극을 곱하니 폭주해버린 '펜트하우스' [리뷰에세이]





신박하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더더더더 자극적이어야만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마저 없애버리고 말았다. 아니, 사실은 살아있거나 쌍둥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유령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 작품이 ‘펜트하우스’라면….

주인공이 칼에 찔려 사망했지만, 진짜 죽었는지 혹은 계략인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소품 실수로 오윤희(유진)의 DNA 검사지에 XY염색체가 보이자 트랜스젠더설이 나온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민설아의 죽음조차 ‘복수를 위한 설계일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신박한 드라마가 세상에 또 나올 수 있을까?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악인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욕망의 성 헤라펠리스 안에서 상대에게 무릎 꿇는 것은 곧 복수를 위해 추진력을 얻으려는 목적이다. 다음 회차에서 그 복수는 실현된다. ‘어떻게’는 상관없다. 남의 집도 제집마냥 문 따고 잘만 들어가는데. 샴페인을 즐기며 키스하다 악다구니 쓰면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반전이 일어난다. 개연성, 그건 ‘펜트하우스’ 안에서 너무 어려운 말이다.

100층짜리 헤라팰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내로라하는 재력가지만 하나같이 천박하다. 돈 앞에 장사 없고, 돈 나고 사람났다. 모든 것이 돈으로 둘러싸인 성 안에서 그들은 귀족 같은 삶을 즐긴다. 노란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고, 와인잔을 부딪치며 춤을 추는데 어울리지 않는 괴리감과 불편함으로 가득하다.

이들의 욕망은 무엇을 말하는가. 때밀이로 살다 재력가 사모님들 덕분에 졸부가 된 강마리(신은경)이나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이규진(봉태규)이나, 돈과 권력을 위해 배우자를 택한 하윤철(윤종훈) 고상아(윤주희)나, 심수련(이지아)의 계획 덕분에 벼락부자가 된 오윤희(유진) 모두가 똑같다.

복수극의 주인공인 ‘억울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악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홀로 딸을 키우던 오윤희는 ‘딸을 지키겠다’며 욕심을 채운다. 세상에 예고가 청아예고 하나뿐이냐고, 헤라팰리스를 그렇게 얻을 수 있냐고, 주단태를 갑자기 유혹할 수 있냐고…. 그런 물음에 이미 SBS는 ‘더 킹:영원의 군주’를 통해 답한 바 있다. “그건 생략해.”

어른이 그 모양이니 아이들도 똑같다. ‘주단태(엄기준)의 폭력과 비인간적인 행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단지 철없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위협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편법을 당연시한다. 지거나 위기에 닥치면 소리지르고, 상대를 어떻게든 망치려 한다. 천서진이 오유진에게 그렇듯, 주단태가 모든 이들에게 그렇듯 똑같다. 전직이 국가대표 투수였던 마두기(하도권) 선생님까지도 그런데 뭐.



작품은 이들 재력가들을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라 한다. 재력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한껏 끌어올린 뒤, 이들을 ‘나쁜 놈’으로 표현해 욕을 쏟아내게 한다. ‘그렇게 돈 많고, 욕심 내봐야 결국 벌 받을 것’이라는 클리셰(진부한 설정)는 항상 먹혀든다. 그것도 한동안 자극적인 작품들이 없었고,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허덕이는 이 시기라면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자극적으로’를 목표로 한 작품인 만큼 폭주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단 하나의 개연성도 갖추지 않은 작품의 인기는 자극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첫회부터 민설아(조수민)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해 왕따, 불륜, 갑질, 복수, 출생의 비밀, 학교폭력, 학대, 사기, 부동산 개발 폭리, 패륜 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모조리 털어 넣었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큰 자극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다 결국 주인공까지 살해하는 단계에 다다랐다.



엄마여서 복수해야 하고, 엄마여서 지켜야 한다는 명분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치닫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단태의 위협을 알면서도 집사 전화에 ‘석훈이, 석경이를 지켜야 해’라며 집으로 달려가는 심수련의 행동을 모정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 진짜 있을까.

자극에 면역이 되면 당연히 더 큰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끊임없이 폭주하다 마지막회 직전 주인공까지 사라지게 만든 기막힌 이야기는 어떻게 끝맺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작품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시즌2 편성 이야기를 가감없이 하는 상황을 보며 욕심으로 볼이 빵빵한 펜트하우스 밖에 존재하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을 목격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펜트하우스’는 2회 방송을 심의해 방송심의규정 제36조 1항 과도한 폭력 묘사, 제44조 2항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며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PD저널에 따르면 이소영 위원은 “SBS 측은 방송소위에 출석해 ‘드라마에 묘사된 것보다 현실은 더 잔혹하다’고 해명했으나 현실이 잔혹하다고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의문”이라며 “드라마가 살인이나 폭력, 물신주의를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사적인 복수를 통해 쾌감을 극대화시킨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런 문제점에 대해 SBS도 내부 심의에서 등급조정 요구와 재편집 요구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작진이 무감각해진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내말이….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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