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비롯한 상당수 고위공직자들이 최근 재산신고를 누락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주식매각·백지신탁 공고조차 부실하게 기재된 사례가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경기 침체, 주식·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국민들이 공직자 재산 증식에 유독 예민해져 있는 시점인 만큼 악용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더 세밀한 검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5일 고위공직자 11명이 지난해 말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한 신고 사항을 관보에 게재하면서 김영심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상임위원의 배우자가 지난해 11월19일 한미약품(128940) 주식 9주를 9,723만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법조인인 김 위원은 지난해 10월30일 권익위 중앙행심위 상임위원으로 신규 임용됐다.
문제는 한미약품의 주가는 지난해 11월19일 종가 기준으로 32만7,500원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장중 변동이 있었다 하더라도 한미약품 주가는 전날인 11월18일 종가 기준으로도 31만2,500원 밖에 되지 않았다. 올 1월6일 기준 한미약품의 종가는 37만8,000원이었다. 9주를 장내에서 1주당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 기회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이 신고한 11월19일 배우자의 주식 매각액은 한미약품 외에도 대부분 실제 주가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배우자가 SK(034730)(11월19일 종가 21만4,500원) 100주를 9,456만9,000원에, 삼성전기(009150)(11월19일 종가 15만500원) 30주를 7,279만4,000원에, GS건설(006360)(11월19일 종가 3만1,250원) 70주를 6,822만4,000원에, 덕우전자(263600)(11월19일 종가 7,020원) 2,000주를 6,602만5,000원에, 코스맥스엔비티(11월19일 종가 7,600원) 1,000주를 5,190만1,000원에, 에이스테크(088800)(11월19일 종가 2만3,500원) 1,000주를 4,427만원에, 뉴프렉스(085670)(11월19일 종가 2,225원) 2,250주를 2,131만2,000원에, 우리바이오(11월19일 종가 6,090원) 2,000주를 1,645만9,000원에, 젬백스(082270)(11월19일 종가 2만4,450원) 100주를 687만4,000원에 각각 팔았다고 정부에 신고했다. 종가 기준으로 볼 때 종목마다 단순 계산으로도 산출되기가 힘든 매각금액이 기재됐다. 특히 종목이 더해질 수록 매각 액수가 점점 커져 마치 금액이 누적되는 듯한 흐름도 보였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이 같은 모순을 지적하며 신고 경위를 묻자 권익위는 “김 위원 측도 검토 결과 제출한 자료가 잘못된 것 같다며 인사처에 다시 신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주식 수량은 틀리지 않았고 축소가 아니라 과다 신고를 한 것에 비춰 의도한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다시 정정 신고를 하게 해 재공고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공직자의 재산 관련 신고에 이렇게 오류가 속출하는 것은 신고 대상자들의 인식과 이를 뒷받침할 정부 시스템, 인력 등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기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인사처로부터 받은 ‘주식백지신탁 심사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식백지신탁 심사는 최근 5년간 2,156건, 연 평균 431건이 심사됐지만, 심사위원회의 담당 직원은 고작 4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잘못된 신고 내용이 국민들이 보는 관보에 버젓이 게재되더라도 이를 충분히 검토할 시스템 자체가 열악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경우 이를 고의로 악용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경환·안현덕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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