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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日 주권보다 피해자 인권이 우선"...배상은 '외교적 숙제'로

[위안부 할머니, 日정부 상대 손배소 첫 승소]

'주권 면제' 국제관습법 깨고

"예외적으로 韓에 재판권 있다"

日, 국내재판 항소 의지 없지만

국제재판으로 압박 나설수도

피해자 승소에도 집행은 쉽잖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연합뉴스






법원이 8일 일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일본이 주장한 주권 면제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주권 면제 원칙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관습법을 근거 삼아 이번 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해왔지만 결과적으로 패소를 자초하는 패착이 돼버렸다.

이번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비록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주권 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국내 헌법과 유엔 세계인권선언이 ‘재판받을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는 점, 주권 면제 원칙이 가변적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 유엔 세계인권선언 제8조는 재판받을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며 “재판받을 권리는 충분히 보호되고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권 면제 이론은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고 국제 질서의 변동에 따라 수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과거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 운영을 ‘반인도적 불법행위’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미성년이거나 갓 성년이 된 원고들은 가혹한 성행위로 인한 상해, 성병, 원치 않은 임신 등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돼야 했다”며 “원고들은 이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비판했다. 또 재판부는 “이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며 “피고는 이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이날 할머니들의 소송 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선고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고 측과 피고 측이 모두 항소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이번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다. 원고 측인 피해 할머니들은 당초부터 ‘피해자 1인당 위자료 1억 원’ 입장을 고수해온 만큼 해당 입장을 따른 판결에 이의가 없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주권 면제 원칙을 불수용한 한국 법원의 재판권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항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국내 재판 문제를 국제분쟁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법리적으로 가능성은 낮더라도 외교적으로 한국을 망신 주려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소송을 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법리적으로만 보면 ICJ 제소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는 하다. 한 법무법인 고위 관계자는 “애초부터 주권 면제에 해당한다고 본 일본은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대한 제소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주권 면제를 내세워 압류 등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사관·문화원 등 일본 정부 재산의 집행권이 대한민국에 없다는 국제법상 주권 면제를 앞세워 반박 논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이 경우 원고 측이 할 수 있는 방안은 압류 등 강제집행을 할 수 있도록 법원에 재차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피해 할머니들에게 ‘배상길’을 열어줬지만 배상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이 사건에 줄곧 소극적으로 응해온 상황에서 신속하고 자발적인 배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서다. 따라서 실제 배상은 강제집행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이와 관련해 진행된 절차는 아직 없다. 피해 할머니들을 대리해온 김강원 변호사는 “강제집행이 가능한 재산이 있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번 판결에 대해 강제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결의 공은 결국 외교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한국 정부 차원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사망하기 전에 배상금을 우선 지급하고 사후적으로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출발점은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지난 2013년 8월 법원에 낸 조정 신청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자신들을 강제로 위안부로 차출한 일본 정부가 피해자 1인당 1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신청 취지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사건 송달을 거부했고 원고들의 요청에 따라 법원은 2016년 1월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던 2014년 배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공동 원고 김군자·김순옥·유희남 할머니 등도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별세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고 이순덕 할머니 등 3명은 1998년 4월 시모노세키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일본 정부는 1인당 30만 엔, 모두 90만 엔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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