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한국 법원이 위자료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 외무성이 남관표 일본 주재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일 관계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남관표 대사는 8일 오전 11시25분께 도쿄 외무성 청사로 초치됐다. 남 대사는 외무성 청사를 나서면서 취재진에 “일본 정부 입장을 들었다”며 “우리로서는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차분하고 절제된 양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현재 중남미를 순방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을 대신해 남 대사를 만난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은 “국제법상의 주권면제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 정부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교도통신은 다른 외무성 관계자가 “국제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도 전했다.
일본 정부가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한 것은 2019년 8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와 관련해 남 대사를 부른 이후 1년4개월여 만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이 잇따라 배상 확정 판결을 내린 2018년 10월과 11월에도 이수훈 당시 주일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판결로 한일 관계가 크게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교도통신은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승소 판결이 내려진 직후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하면서 “한일 외교 관계가 한층 험악해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한국 법원의 이번 판결을 두고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충격은 일본 민간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징용 소송을 웃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판결 내용을 자세히 파악한 뒤 향후 대응을 검토하려고 하고 있다며 판결을 계기로 일본 정부도 어려운 대응에 내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NHK도 “한일관계가 더욱 경색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내다봤고, 요미우리신문도 “전 징용공(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소송 문제 등으로 ‘전후 최악’이라는 일한(한일) 관계가 한층 더 위기적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일한 관계는 한층 더 위기적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아사히신문 역시 이탈리아 법원이 주권면제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 동원된 자국민에 배상하라고 독일 정부를 상대로 판결했다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패소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 판결이 징용 판결에 이어 향후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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